3월 23일(토) 오늘이 며칠이더라 하고 생각하다가도 허름한 집 어딜 고칠까 어딜 더 정리하고 청소할까 하다 보면 잊고 만다. 오늘은 그새 토요일. 영월에 다시 돌아온 지 며칠 만에 날짜를 잊고 만다. 이곳에서는 따분할 틈이 없고 답답하다는 느낌이 없다. 몸이 피곤하여 온갖 신음을 내며 침대에 눕곤 하지만, 그날 하루 충분히 노동하였다 하는 자부심에 괜히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잠은 잘 오지 않는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 일일까. 괜히 욕심부리지 않고 잠이 올 때까지 깨어있기로 한다. 내일은 마음을 좀 더 내려놓고 어딘가 다녀와볼까 싶기도 하다.
마음가짐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 같은데, (혹은 달라졌다고 믿고 싶은지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종종 보던 사람들과의 관계들로부터 무척 소외되었지만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옆집 이선생님, 골목 어귀 신사장님, 우체국 국장님, 종묘상 사장님, 면사무소 선생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다들 따뜻하게 나를 대해주고, 그 어떤 의심의 눈초리도, 선입견도, 비판적인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안전하게 들어차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늘 편안하다. 아마도 서울집이 다 정리되고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아, 앞으로는 무얼 하며 살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벅차오를 것이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그런 미래가 나는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