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寧越

새 집에 들어와 자는 첫날. 지붕은 비록 곧 주저앉을 듯 하고 사방에서 벌레가 기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집이지만, 이 적막함이, 찬 공기가, 까만 하늘이 너무나 좋다. 여기에 오기로 한 것이야말로, 내가 거의 유일하게 선택한 일임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해야겠다. 앞으로 살아가며 선택하고 배우고 기뻐할 일들도 그러할 것이다. 원치않으나 억지로 하는 일, 다른 이에게 보이기 위해 선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야 진짜 삶을 사는 것 같다. 매일 노동하고 산책하고푹 잘 것이다. 그 이외에 더 바라는 것이 많이 생긴다면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징후일 것. 지금까지의 떠돌이 도시 생활과는 다를 것이다.

오늘은 밭을 일구었다. 일구었다라는 동사를 써본 것은 이번이 처음일까. 겨우내 얼었다가 봄볕에 녹아 보송보송한 흙을 갈아엎고 달걀만한 돌멩이들과 질기게 뿌리를 박고 남아있던 잡초들을 골라냈다. 흙의 감촉이 보드라웠다. 땅 속에서 낙엽과 미생물, 벌레들이 잘 다져놓아 알알이 영글어 있었다. 덩어리 진 흙을 부수면 그 안에서 청량한 흙냄새가 났다. 어릴적 흙바닥에서 실컷 놀 때나 맡아볼 수 있었던 그런 향기이다. 무려 여섯시간 가량을 일했는데, 아무런 것에도 산만해지지 않고, 다른 잡념을 떠올리지 못 할 정도로 집중하여 일에 몰두했다. 이렇게 한 가지 일에 오래도록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더러워진 옷을 털어내고 옆마을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어찌나 행복한 일이던지. 시골살이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사그라들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걱정하지 말자. 부디 도시에서처럼 미래를 염려하지 말자. 어젯밤에는 모처럼 별이 많이 보였다.

여기에 와서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잊기 위해 나는 노동할 것이다. 밭을 갈고 채소를 키우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렇게 하면 분명 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