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 멍하니 있다가 담배를 태우고 무작정 처음 생각나는 일을 시작해버리면 그 하루는 대개 망치게 된다. 꾸준하게 반복되는 일과에서 오는 연속성이나 보람과는 상관 없이, 일단 뭔가 몸을 힘들게 해서 보람과 만족감을 얻고 또 그 이후에 많이 먹고 쉰다는 핑계로 늘어져 있다가 하루를 마감하기 십상이다. 다행히 오늘은 늦게 일어났지만 불안해 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단 십분 동안 만이라도 하루의 계획을 세워보았다. 그날 주어진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정해놓고, 그 일과를 어떻게든 맞추어 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무작정 생각나는 대로 하루를 보내는 것 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또한 갑작스러운 초대나 손님이 있다 해도, 그에 맞추어 머릿 속에서 시간을 조정하고 마음에 여유를 갖는 것이 가능하다. 오늘은 우편을 보내고, 주방을 청소하고 책을 읽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보람차게 보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슬슬 졸음도 밀려온다. 이렇게 조금씩, 규칙적인 일과를 늘려 갈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이메일을 쓰거나, 홈페이지를 관리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스케치를 나가거나, 또는 멀리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충동적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 단지 내 성향이 충동적이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핑계일 뿐이다. 나에게는 꾸준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 이외에 중요한 것은 없다. 그 성실성이 어딘가 여행을 가던, 해외에서 작업하던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목표이다. 오늘은 정말 그 순간 순간 해야 할 일에 집중하였고, 마음에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마음이 편안하여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부드럽고 여유로웠다. 좀 더 서두르지 않고, 좀 더 여유가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 길거리에서 붙잡고 한시간 동안 하소연을 하더라도 너그럽게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벌레가 달라붙어도 성급히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김새를 가진 벌레인지 찬찬히 관찰하고 슬며시 놓아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보리차를 끓여서 무심코 목을 축이는 것이 아니라, 보리차에 숨겨진 맛, 하나 하나를 음미하며 마시고 싶다. 급하게 끓여 먹는 라면이 아니라, 정성껏 보기좋게 차린 그런 식사를 하고 싶다. 오늘은 이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