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던 감정들이 잦아들더니,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나태함, 자만, 오만함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작아진 마음 덕에 조금 겸손해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또 거만한 내가 나타난다. 양 극단만이 있고, 중간은 없는 것일까. 새로운 작업실에서 상큼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계획대로 착실히 일을 진행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피곤함에 잠들던 모습은 또 금새 어디 가고 계획 없이, 많이 먹고, 피곤해하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 자신.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 역시 변한 것이 없다. 좋은 점을 나열해 볼까. 요즈음 잠을 잘 잔다. 그 점은 아주 칭찬해 주고 싶다. 그리고 그림을.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고 무진 애를 쓴다. 애를 쓰는 것 만으로도 칭찬해줄 수 있다. 그림을 매일 그릴 수 있는 시스템. 그 시스템만 마련할 수 있다면 나는 아주 행복할 것이다. 그 시스템이 있다면, 어떤 그림을 그리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무엇이든 창작하고. 그 창작물을 기록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을 것. 지금 이 짧은 기록 안에서도 그림 그릴 소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가벼워짐'에 대해 갖는 죄책감. 중간이 없고 극단적이기만 한 나 자신. 오늘은 또한, 불안. 급격하게 증대되는 불안. 짜증. 그런 것을 느꼈다. 전에 볼 수 없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