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함이라는 것은 시대의 이대올로기. 그것을 재는 척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유아적인 나르시시즘. 진정성이라는 것은 개소리. 뭐 이런 식의 이야기가 출근하는 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아마도 ‘윤’의 진정성 운운하는 변명에 대한 라디오 진행자의 촌철이었을 것.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다가. 뭔가 중요한 정보를 단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한쪽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위아래로 바쁘게 스크롤 한다. 볶음밥은 맛있었는데, 늘 그렇게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있다. 지금, 이 순간 볶음밥을 먹는 일 이외에 중요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는 것을 깨닫고는,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래볶음밥의 맛을 느껴보자. 아니, 매일 먹는 식사에 대한 리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 처음에는 밥알이 퍽단단해서 고슬고슬 씹는 맛이 좋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웍에서 계란과 파 기름에 둘둘 잘 볶아져서인지, 밥알을 씹으면 씹을수록 새어 나오는 고소한 파기름 맛이 무척 좋았다. 짜장 소스는 늘 짜다고 느꼈었는데, 오늘은 조금 이른 점심시간에 와서 그런지, 적당한 느낌이었다. 볶음밥을 먹을 때엔 자장 소스를 너무 많이비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 따로 나오는 짬뽕 국물을 더 좋아한다. 오늘따라 짬뽕 국물이 맛있었다. 역시 중국집은 식당에 찾아오는 시간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
흡연은 임플란트가 실패할 확률을 네 배 높인다는 치과 상담사의 경고에, 그래, 이참에 끊어볼까- 하고 생각하고는 이틀이 지났다. 그런데 이게 왠일,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생활하는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담배 끊지 못한다고 갖은 창피와 굴욕, 모멸을 당하고도 꿋꿋이 태워온 이십년인데.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라고 일단 끊은 것처럼 말해 본다.
질질 끌던 몇 가지 프로젝트가 끝나가고, 밀렸던 배송 건을 처리했다. 행선지는 미국, 네덜란드, 이스라엘. 단돈 삼사만 원에 내 그림들은 국경을 초월하며 잘도 다닌다. 그림이 도착할 텔아비브의 주소를 지도에서 찾아본다. 단정하게 지어진 베이지색 삼층 주택. 낮은 담벼락 주변에는 야자나무가 조경되어 있다. 그림을 주문한데이브-씨가 반가운 듯 한 손을 들어보이며 저쪽 골목에서 걸어올 것만 같다. 짙은 눈썹에 다부진 느낌의 눈과 입, 호리호리한 체형의 젊은 청년일 것 같다. 걷보기엔 냉정하고 담백한 사람인 것 같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금세 흰 치아를 살짝 내보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일 것 같은 그런 아름다운 청년- 일 것 같다. 비록복제된 그림이지만 기꺼이 사주는 사람들을 언젠가는 직접 만나러 다녀보고 싶다.
누리호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수직으로 상승하는 로켓의 운동은 언제봐도 대단하고 감동적이다. 우르르 온힘을 다해 중력을 거슬러 지구를 탈출하는 그 모습이 대단하다.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는, 지어진 한계를 벗어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