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오랜만에 그런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예전에 느껴봤던 것과는 다른 몰입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마도각종 소셜미디어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알고리듬이 내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무렵, 단 오분도 그림을 구상하거나 책을 읽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망연자실, 의기소침했던 때가 있었다. 도저히 고쳐지지 않아, 스마트하지 않은 핸드폰을 써본다던가, 각종 아날로그 기기들을 다시 써보려 한다거나 하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산만해져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보라고 강요하는 알고리즘에 백기를 들고 말기를 반복. ‘아! 저항은 인제 그만, 시대에 순응하자’ 마음을 고쳐먹고서, 그 산만한 정신을 이고 지고 어찌 어찌 살아가고 있다. 여태껏 나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산만하게 움직이는 생각의 흐름을 굳이 막아서서 제어하려 하지 않고, 무언가 떠오르면 그것에 집중하고, 또 다른 것이 생각나면 그 생각에 집중해보기로 한 것이다. 몇 분 단위로 생각의 주제를 계속 바꾸는 일이 여전히 복잡하고 산만하게 느껴지지만, 그 나름대로 생산적인 하루를 보낸 것 같아 개운한 기분. 산만한 것도 나쁘지 않다.
올해는 유난히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책들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나름 공들여 추려낸 책 서른 권 쯤이 침대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지만, 이사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 우파니샤드모음집을 펼쳐 들었다. 그래,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십 대초반부터 시작된 나의 철학 편력의 이동 경로를 말하자면 그러하다. 인도 현자의 금언에서 독일철학으로, 독일철학에서 그리스 철학으로, 오스트리아와 영국을 잠시 경유한 뒤 프랑스 철학으로, 프랑스 철학에서 과학으로, 과학에서 다시 동양철학으로, 철학에서 불교로, 불교에서 힌두교로, 힌두교에서 인도 고대 베다 경전으로… 여기서 멈춘 이후,사실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물론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가장 최근에내 관심사가 가리키는 곳이, 나에게 처음 철학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던 그 시대, 그 지역의 철학으로 나를 다시 돌아오게 했다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진다. 내가 알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의 비밀이 머지않은 그곳에 있을것만 같다. 언젠가는 꼭 히말라야가 가로지르는 인도의 북부, 네팔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여행해보고 싶다.
금연 3일 차, 시험삼아 달리기를 해보았는데 평균속도가 무려 1분이 단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