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동해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처음보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어른들은 젊은 작가들과 어떻게든 아이스브레이킹 하려고 연신 싱거운 농담과 술잔을 건넸고, 어린 친구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알려 기회를 잡으려는 듯 그에 열심히 호응한다. 나는 중간에서 ‘네네네’, ‘어버버’-하며 선배도 후배도 아닌, 작가도 디자이너도 일러스트레이터도 아닌 어딘가 애매한 입장에서 부자연스럽게 웃고만 있었다. 사실 타인의 일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대체로 많은 것들에 냉소하는 편이지만, 사람들 속에 있으면 괜히 무언가 궁금한듯 물어보고, 자랑하고 싶으면서도 겸손해하며 쑥스럽게 웃는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태도로 억지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자니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날 것 만 같았다. 그런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도, 인상이 좋아 보인다는 칭찬을 계속 들었다. 괜히 술을 많이 마셨고, 마셨는데 그리 취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그 사람의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자-고 며칠 전에도 다짐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단점을 찾기 바쁘다. 맛있는 바다 요리를 먹었는데 음식 맛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여러 사람을 만나 웃고떠들고 마셨는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이상한 밤이었다. 담배 한 갑을 사서 한 개피를 피우고 나머지를 취한 선배 가방에 넣어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숙취가 없어 기분이 좋았다. 망상해수욕장에서 달리기를 조금 하고 해변에 주저앉아 파도를 바라보았다. 바다 색이 유독 파랗고 검었다. 검고 푸른 색 물결 위로 포말이 흰 띄를 이루어 베이지색 모래 위로 차례차례 내려와 엎어지는 모습이 보기에 무척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문들 오는 길 차 안에서 들었던 라디오 뉴스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얼마 전 동해상에 배 한 척이 침몰했다는 뉴스였다. 밤낮으로 실종자들을 수색하였지만 발견하지 못했고, 배가 가라앉은 수역의 깊이가 무려 오천미터에 달하여 견인을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오천미터 깊이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아마 나는 몇 번 허우적거리지도 못하고 가라앉고 말 것이다. 나는 아직도 물에 뜨는 법을 모른다.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그만 온 몸이 경직되고 숨을 잘 쉴 수 없게 된다. ‘그럴 때에는 죽은 사람처럼 온 몸에 힘을 쭉 빼면 물 위에 뜰수 있어!’라고 수영을 잘 하는 사람들은 말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삶을 포기한 것처럼 죽은 시늉을 해야한다니. 참 재미있다. 오천미터 깊이의 낭떨어지를 발 아래 두고도, 죽은 척, 눈 딱 감고, 그런 심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면 살 수 있는것이다. 사실, 요즈음 대부분의 날들을 그렇게 붕 뜬 채 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그냥 눈 딱 감고 잊은 채 살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