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보다 느낌

조금 쌀쌀한 아침, 따스한 오후의 빛, 그리고 신선한 저녁 공기. 크게 걱정할 것이 없이 평탄한 어제와 오늘이 지나간다. 아름다운 계절이 지나간다. 또 다가올 바쁜 일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간밤의 부끄러운 일들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오늘 나를 기쁘게 할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고 설레는 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점심에는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들고 산에 올라가서 먹어야지-하는 그런 생각. 저녁에는 서점에 들러 벼르던 책을 구경하고 슈베르트의음반을 사고 싶다-하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림에 대해 생각해본다. 하나의 그림에는 그만의 고유한, 이전과 다른 의미를 담아내야만 한다-라는 고집을 어느 날 버리고 나니,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사실 이전에도 ‘단 하나의 의미’를 담는다는 면에서, 단순함을추구한다는 면에서 지금과 다를 바 없겠지만, 지금은 조금 더 단순해지고자 하는 것이랄까. 그림 안에서 ‘나’를 조금 더 덜어내고 있는 중이랄까. 감상자에게 더 편안한 그림이라는 면에서,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나에게서 감상자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도 말 할 수 있겠다. 요즘의 나의 그림은 그렇다. 

하루하루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어떤 강박에서 벗어나, 어떤 날은 그냥 멍-하니 보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을 만날 때, 모든 관계가 운명적이고 중요한 관계여야만 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가까워졌다-멀어졌다 반복하는 것 뿐. 그 과정들을 태연하게 편안히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에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그림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