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요가 수련자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때, 아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침마다 요가를 가는 일이었다. 마음에 어려움이 있을 때 스스로에게 가장 올바른 치유법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아내가 존경스러웠다. 아내가 요가를 시작한 올 봄 이후로, 우리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던 여러 불안 요소들이 잦아들고 가정에 더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요가의 순기능을 곁에서 목격한 그때부터 나는 이미 요가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어떤 경외심마저 갖고 있었다. 요가원에서 과연 어떤 체험을 하기에, 그녀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불안과 불만을 단번에 꺼트릴 수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나에게 요가는 너무도 거대한 세계였기에 섣부르게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답답한 실내에서 하는 운동보다는 홀로 자유롭게 달리기를 하며 긴장과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나에게 더 맞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내가 요가를 가는 길에 나를 남산 둘레길에 내려주면 나는 한 시간 정도 달리고 나서 남산 도서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돌아오는 아내의 차를 얻어 타고 함께 집에 오는 것이 우리의 아침 일상이었다. 그렇게 온전한 아침을 보내고 나면 우리의 하루는 이미 알차고 뿌듯한 기분이 되어 저녁까지도 충만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곳 독일에서도 아내가 요가원을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낯선 언어와 환경 탓에 쭈뼛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배워 보고 싶으니 같이 가보자고 아내를 부추겼다. 사실 아내가 잘 적응할 때까지 몇 번 같이 가보고, 나는 다시 같은 시간에 달리기를 할 심산이었다. 그렇게 한 번 체험해 보고, 두 번, 세 번 가다 보니 벌써 일주일 넘게 아침 저녁으로 요가원을 다니고 있다. 어떤 극적인 체험처럼 과장해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요가를 앞으로 계속해야겠구나‘하는 마음이 일었다. 어떤 육체적인 단련과 이완에 있어서도 완벽한 운동이기도 했고, 사바사나- 라고 하는 요가의 마지막 순서를 하고 일어났을 때 나의 마음가짐이 너무나 달라져있음을 매일 체험하고 나니, 이것은 참 좋은 경험이다- 라는 생각만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어렵고 낯선 동작들을 따라 할 때는 중 고등학교 때 얼차려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다 하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또, 죽은 듯 누워 숨만 쉬고 있을 때는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죽음의 순간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 조금 과장된 생각이지만, ‘오늘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까?’하는 생각을 매일 한 번쯤 해보는 일이 그날 하루 종일 내 마음에 끼치는 좋은 영향이 틀림없이 있었다. 어쩐지 더 자비롭고 더 생기가 도는 기분이랄까. 마치 처음 하프 마라톤을 뛰어보고는 러너스하이를 느껴보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 일주일 밖에 요가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참 말이 많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음 아내와 요가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지나며 철학에 대한 짝사랑으로 읽어왔던 수많은 인문 철학 서적들, 나의 독서 편력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던 철학이 바로, 인도의 고전 철학이었다. 누구에게도 추천해 본 적도 없고, 단지 혼자서 나만의 경전이라 생각하고 읽어오던 책이 ‘바가바드기타’인데, 아내는 나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다른 경험을 해왔는데도, 아내와는 이 경전 속의 말들이 쉬이 통한다. 요가를 글로 배운 사람과 요가를 몸으로 이해한 사람이 나누는 대화랄까.
우리 둘만의 또다른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