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5, 2024

아침에 요가를 가는 것과 더불어, 하나씩 둘씩 루틴을 만들어간다. 그중 하나가 서예. 단지 붓글씨를 연습하는 것 말고, 의미 있는 공부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불교의 핵심 교리를 담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을 써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생을 쓰고 있자니, 쓰는 것만으로도 뭔가 도통한 기분이 든다. 늘 눈으로 읽고, 귀로 듣고 하던 내용을 당나라 현장법사가 번역하며 한자 한자 적어내려가며 쓸 때의 비장함과 희열이 느껴지는 것 같달까. 아무래도 과장이 좀 많이 섞인 듯 하지만, 불교의 공 사상의 요체가 담긴 참으로 기막힌 문장이다.

내가 붓을 움직여 글자를 쓰고 있지만, 글자가 쓰인 종이도 공하며 먹물도 공한 것이다. 먹물도 종이도 종이가 되기 이전에는 나무였고, 나무가 자라기 위해 비가 내려야 했으며, 비가 내리기까지 구름이 만들어졌어야 했으니, 종이는 종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인연의 과정이 함께 있는 것. 그래서 종이는 공하기도 하고 또 모든 것이기도 하다.- 는 것.

불교 사상의 요체를 설명하면서 공, 을 설명하는 것이 마치 바가바드기타의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과 다르지 않게 여겨졌다. 몸은 무상한 것이어서, 죽음으로 끝나거나 태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 설명하는 대목 말이다. 또 어쩌면 임마누엘 레비나스가 시간과 타자의 서두에서 절대적인 ‘무’를 상정해보자 하는 대목과도 비슷하다고 해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