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와보았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이 다 꺼진 연말 연초 파리의 겨울은 유독 쓸쓸하고 어수선하고 허전한 기억뿐이었다. 오기 전부터 그런 울적한 분위기를 상상하고 왔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날씨도 봄처럼 포근하고 거리 곳곳에 활기가 넘쳐났다. 아마도 아내와 함께여서 그렇게 느낀 것이기도 하겠지만, 관광객이 아니라 전시회의 주인공으로서 여러 관객의 축하와 환대를 받으며 보낸 터라 도시의 풍경조차 달라 보였던가 보다. 하루하루 전시회 오픈 준비를 하면서도 아내와 도시 구석구석을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이전에는 도무지 갈 마음이 생기지 않던 루브르, 오르세이 뮤지엄도 다녀오고, 그렇게도 해보고 싶었던 공원 달리기도 해보았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비주를 나누었던 다미엔과 마야, 임마누엘! 그리고 어릴적 나의 아이돌, 에어의 덩켈씨와의 저녁식사까지, 지난 십 일이 꿈같기만 하다. 아내도 파리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어쩐지 십 년 전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늙어가는 내 모습이 허황된 꿈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처럼 느껴진다. À bientô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