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 이야기

지난 오월, 일본 나라에 위치한 고매원 古梅園 본점에서 구입했던 송연먹 松煙墨 이 두 계절 지나며 거의 다 닳았다. 먹을 구하려고 비행기도 타고 기차도 갈아타고 했으니 내가 가진 먹 중에 가장 비싼 먹이다.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먹의 가격은 아무래도 원재료를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가에 따라 결정된다. 송연먹은 문자 그대로 소나무 송진을 태워 얻어진 그을음을 긁어모아 만든 먹이다. 그을음에 아교를 섞어 반죽을 만들고 수없이 치대어 내부의 공기를 빼낸 뒤, 쉽사리 부러지거나 갈라지지 않도록 오랜 시간 말리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송연먹은 일단 나무 한 그루를 태워 얻을 수 있는 그을음이 워낙 소량이다 보니 값이 제법 나간다. 고매원 본점에서 구입할 때는 이것이 송연 백 퍼센트인지를 몇 번이고 묻고 확인한 뒤 구입해 왔는데, 얼마 전 한국의 한 필방 사장님께 얘기했더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하신다. 백퍼센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도 소나무 수십그루가 태워지는 상상을 하고보니, 굳이 백퍼센트가 아니어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오히려 화학 원료의 먹물을 쓰는 것이 세상에 이로운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튼 내 검지손가락만 한 이 작은 먹으로, 그동안 못해도 천호쯤 되는 그림은 그린 것 같다. 조약돌처럼 반들거리는 검은 먹이 작품으로 변하고 그 작품을 팔아 월세도 내고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생각하니 어쩌면 믿기 힘든 요술이 일어난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예술가의 삶을 안쓰럽게만 바라보는 먼 친척이 나에게 ‘도대체 뭘 해 먹고 사냐?’고 물으면, 요 작은 검은 돌을 꺼내어 보여주고는 싱긋 웃어 보일까 보다.

가난뱅이 작가 시절에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먹을 벼루에 갈아 원하는 만큼의 먹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 참 사치스럽다고 여겼더랬다. 낮 동안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두어 시간 자투리 시간에 먹을 한번 갈아보겠다고 한참 먹을 갈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였고 다음날 딱딱하게 굳은 벼루를 박박 씻어내며 한숨을 쉬는 일이 다반사, 그 일을 몇 번 반복한 이후로는 먹과 벼루를 상자 안에 고이 넣어두고는 먹물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래도 딴에는 갈아 만든 먹물로 그리지 않는 것이 수치스럽게 느껴졌는지 화방에 진열된 먹물 중에서도 제일 비싼 먹물을 사곤 했었다.

지금은 내 그림을 구입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생기면서 되도록 먹물이 아닌 먹을 직접 갈아서 만든 먹물을 쓰려고 한다. 전시장에서 구입한 그림을 표구하다가 상처가 생겼다고 따로 연락을 주고는 몹시도 미안해하는 컬렉터를 보면서, 또 매 전시마다 새로운 작품을 구입해주고 사용한 재료에 대해 묻는 컬렉터를 만나게되면서, 내가 그린 그림이 어느 순간 나의 것도 컬렉터의 것도 아닌 어떤 공공의 영역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선택하는 종이와 먹도, 화판의 재질도 이제야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달까.

아무튼 이제 좋은 먹을 써보자- 하고 비행기와 기차를 갈아타며 고매원 본점까지 가져온 먹이라서, 또 이렇게 손톱만큼 작게 먹을 온전히 갈아 본 적은 처음이기도 해서, 기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가 보다. 지금도 여전히 갈아서 만든 먹물과, 공장에서 제조한 먹물이 어떻게 다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른 것이라면 붓이 머금고 있던 물과 흑연 입자가 종이 위에 떨어져 안착되는 속도가 미세하게 다른 정도일까. 먹의 오묘한 빛깔의 차이라던가, 수명이라던가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그림을 그리기 전 한 시간 만이라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데에 먹을 가는 일만큼 좋은 것이 또 없다. 정성이 한 움큼 더 들어갔으니 그림이 괜히 좋아 보이는 것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