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라는 단어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쯤 부터더라- 무슨 캔디 만화에서처럼 행복한 생각과 기분만 갖자라는 식의 다짐에서 출발한 결심은 아니다.단지, 우울 이라는 감정이 괜히 나에게 있어서만 어느 순간 부터 싸구려 감상으로 전락해 버렸으니까. 그게 언제 인지가 갑자기 궁굼졌다. 별다를 것 없이 비오는 어떤 하루였을 뿐이고, 누군가가 어떤 필연적인 빌미를 제공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분명 난 오늘 우울했으니까.
왼손에 들고 있는 자판기 커피 탓인지. 아니면-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 있던 던-힐 탓인지. 혹은, 타들어 가는 연초 끝에 스민 작은 빗방울 자국을 보았기 때문인지. 하나씩 둘러 보아도 단서를 잘 알 수 없다. 글쎄- 음 확실한 증거 없이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일은 좀 우습지만. 마지막으로 내뿜은 담배 연기가 비가 내리는 풍경 속으로 떠나가며 느껴지는 어렴풋한 어떤 향기와, 독한 감기에 걸렸을 때 입안에서 맴도는 어떤 단맛과, 짧게 깎은 머리카락 위로 스치는 바람에 느껴지는 미묘한 떨림 따위가 일순간 과거의 어떤 날의 감정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 언젠간 친한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소름끼치도록 분명한 목소리로 내 삶의 이니셔티브는 '우울' 인 것 같다고 꽤나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 같지만, 그보다 더 적당한 단어를 정의할 수 있으면 모를까 그 전까진 우울하다라는 투정을 부리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다만 엘리엇 스미스의 노래를 듣고 있을때는 좀 예외로 해도 무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