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 감수성을 비웃게 된다.
젊은날의 나, 혹은 얼마전 까지의 나, 혹은 지금의 나. 는. 적어도 삶에 운명론-같은 것을 대입시켜 본 적이 없다.(없었다) 나- 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계- 같은 걸 그어 보고자 연필을 집어 본 적도 없다. 비굴하게 굽신 거리며 누군가의 비위를 맞춘다거나, 착한 머리 모양을 하고- '무슨일이든 다 맡겨주세요 대현이가 있잖아요!' 하고 쌩긋 웃고 있다 해도, 한편으로는 아키라-에 등장하는 아키라군이 지을법한 미소를 머금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시상식에서 외친 것처럼 I'm the king of the world!! 하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뭔가 항상 믿는 구석이 어딘가에 있는 것 처럼- 의미가 심장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키라군은- 과학자들의 잘못된 신념으로 제 몸을 끝없이 생산 하며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었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터미네이터 T1000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용광로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린 것 같다.
예를들면 그런 셈이다. 오래전에 본 영화를 또 다시 보면서도 똑같은 장면에서 마치 처음 본 것인양 눈물을 글썽이거나- 키득 거리며 웃고있는 그런 모습- 그런 그의 위선-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는- 그가 그 영화를 이미 두 번, 세 번 아니 뭔가 자신의 삶에 집착하기 시작한 그 어느 순간 부터 몇년동안 매일- 보아왔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지만, 무엇 보다도 그 스스로가 너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그를, 우리를, 나를 비웃게 만드는 그런 것.
바로 얼마 전에 뭔가 삶의 비밀을 발견해 낸 것처럼 가슴을 치며- 앞날을 다짐하고, 바로 내일부터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거라는 듯 반짝거리는 눈빛이 되었다가도- 금방 또 며칠 후에 같은 오류에 같은 후회를 하면서도, 마치 그것에서 어떤 징조 나 전조를 발견해 낸 것 처럼, 그것이 삶의 중요고 새로운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런 나 자신을 비웃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살짝 미소를 머금고- 뒷통수를 쓰다듬고 싶어진다. 적절한 멘트는 짧게 네 절
욘.석.쯪.쯪.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쩌면 평생 나는-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망할! 세상은 너무 지루하잖아!!' 중얼중얼 되뇌거나, 느즈막히 12시쯤 눈을뜨며 '난 역시 조직사회엔 어울리지 않아- ' 라며 한탄한다거나, 왈할라 크림치즈 스파게티와 포엑스를 끝까지 비운 채 뱃살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에게 운동이 왜 타당한지 따위를 설득하고 있다거나- 하는 끔찍한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 둘,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되어있던 지극히 일상적이고, 진부한 고민들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그런 진부한 고민들에 대한 고민 자체를 진부하게 여기며 바이건스- 바이건스- 바이건스- 하며 익숙해 지기 시작했고, 그런 진부한 고민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 위로, 감수성에 조차 '너도 별수 있겠어?' 비웃음을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뭐 그런게 다 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