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생각들

1.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겠답시고 매년 연중행사처럼 선언하기 시작한지 한 오년 쯤 된 것 같은데. 무엇이든 시도에만 그친 채 완성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것은 나 처럼 그저 써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써 지는 것이 아니며, 한 권의 소설을 완성 하기까지에는 끊임없이 다짐하고 또 포기하고 또 숙고할 수 있는 무덤덤한 인내와 강한 정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니까.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있는게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으니, 이제 부터는 '난 아무나가 아니야' 라고 매년 선언해야 하려나보다.

2. 이전의 어떤 글에서 한 요술쟁이는 내게, '당신은 그 요술을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것이오' 라고 못박았지만, 요즘 나는 어렴풋이 그 요술을 알 것 같다. 이전에 나는 여느 사람들 처럼 나도 저녁에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워 잠들면 다음날 그저 아무렇지 않게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나에겐 그게 정말 '잘 되지 않는 일' 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저 보통의 정상적인 하루를 시작하는 것만 해도, 그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얼마나 아침을 열망해야 하는지를 몰랐었다는 말이다. 스물 여섯 해 겨울이 다 지나서야 아침이 얼마나 찬란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으니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3. 가끔 창문을 열어놓으면, 무엇인가가 '빵' 하고 터지는 소리가 그것도 아주 실감나게 빈 도시안에서 들려오는데, 왜 나는 항상 처음엔 그 소리를 총소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가해자는 재빨리 몸을 숨기고, 피해자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차가운 도로위에 눕는 상상이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어떤 때 에는 한꺼번에 '빵 빵' 하고 터지기도 하고, 가끔은 시간차를 두고 '빵-' '빠앙' 하고 울려 퍼지기도 한다. 한꺼번에 빵 빵 하고 울려 퍼지면 틀림 없이 나머지 한방은 확인 사살용 탄알이었을 것이고, 시간차를 두고 울려 퍼지는 두번째 총성은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공포탄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의 비명소리나 몰려든 군중들의 웅성거림, 경찰차의 다급한 사이렌 소리 따위는 아쉽게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아마 누군가가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다가 재수 없게 못을 밟았겠지, 어떤 한심한 작자가 아침이 이렇게 찬란한지 몰랐다며 자축하는 의미로 폭죽을 터트린 것에 불과하겠거니 생각하고 말지만, 매번 저렇게 상상하는 걸 보면 참으로 순진하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든다. 이런 상상력이라면 미스테리 범죄소설을 시도 해 봐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4. 끊임 없이 나에 관해 보고해야하는 부모로부터, 끊임 없이 가쉽을 생산 해 내는 친구들로부터, 집단이라는 이유로 무엇인가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단죄할 수 있는 조직으로부터, 나 스스로 만들어낸 적들로부터, 그것이 무엇이던간에, 그 무엇엔가로 부터 도망칠 수 있고, 숨을 수 있다면, 비로소 숨통이 트일 것 같고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 생각은 결국 끊임없이 아무도 존재 해서는 안된다는 관념을 갖게 하고, 그 관념은 계속해서 의식해야 하는 또다른 감시자를 만들어내 버린다.

+ 5. 아무도 나를 읽으려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그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나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아무도 나를, 나의 텍스트를 읽지 않는다는 생각은 동시에 아무 것도 쓰지 않게 하기도, 아무 것도 어필하지 않게도 만든다. 고로, 아무것도 어필하지 않고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의식할 필요가 없게 되어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