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손 의지

필름이 남아있지도 않은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는 것처럼 육십분 후에 꺼지도록 맞춰놓은 모과이의 음악은 벌써 끝이 나 있는데도 나는 깨어있다. 창문을 조금만 열어 두려 해도 자꾸만 라이프치히 차가운 공기가 슬그머니 그것을 밀고 들어오려는 통에, 나는 계속 담배를 돌돌 말거나, 냉장고에서 몰래 차가운 우유를 훔쳐 먹으면서 온기를 유지한다. 어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노이즈도 그저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듣는 것 만으로도 그 순간부터 그 것이 내게 결정적 비지엠이 되어 버리는 일은 참으로 놀라운 일. 서랍 속에는 5센트 짜리 동전 한 개와 2센트 짜리 동전 아홉 개, 그리고 1센트 짜리 동전 아홉 개가 차곡 차곡 쌓여있지만 그 것으로는 까칠한 브롯헨도 살 수 없고, 로우펫 프레쉬 밀히도 살 수 없다.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시간에, 아무 것도 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계절에도, 아무 것도 토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공복에도, 내게는 왜 모든 것이 가능하게만 느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