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이라던가 헌신이라는 가치는- 공교롭게도 그것이 그의 이기에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지 애써 그 것에서 숭고함이나, 고결함이라는 가치를 쥐어짤 필요는 없다- 라고 그는 이야기 하고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진실성에 대한 척도는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그가 그 스스로를 얼마나 그것에 희생하는가 또는 헌신하는가. 즉, 그가 얼마나 그것에 대해 이타적으로 보여졌는가 의 문제일 것이다.
진정성이나 진실성이라는 지고지순한 (동시에 지리멸렬한) 가치는 누가 더 진정한 마음을 가졌는냐- 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누가 더 감정적, 도덕적 우위에 서 있느냐를 따지게 될 때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사랑' 을 두고 서로의 진정성을 논하고, 경쟁하고, 평가하는 전인류적 이슈를 생각해 보았을때 (나를 포함하여) 그 이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척도인 '헌신' 혹은 '희생' 정신을 위의 이야기에서 결론지은 대로, 그저 어떤 개개인의 기호嗜好 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다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가정도 가능할 수 있겠다.
A 당신은- 평소에 희생을 즐기시나요?
B 네 전- 누군가에게 헌신 할 때가 가장 만족스럽더군요
A 아 어쩐지 전- 당신이 절 사랑하시는 줄 알았지 뭐에요?
B 하하 죄송해요 제가 너무 헌신을 즐기다 보니 그런 오해들을 많이 하곤 하죠.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내게 중요하다는 어필-을 하기 위해- 혹은 감정적 우위에 서기 위해 위에서 실컷 평가 절하한 '헌신' 이라던가 '희생'이라는 가치를 이용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이 '이용' 되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이상, 더이상 어떤 순진함이라던가 순수함을 이야기 할 자격은 없다. 또 슬퍼할 자격도, 외로워할 이유도 없다.
스스로에게 슬퍼하거나 우울해 할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우울한 것 보다 더 아쉬운 일은 내게 있어서 pathos의 원천이 되었던 것 들이 하나 둘, 가치를 상실하고 무의미해져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pathos의 죽음이 또하나의 pathos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좀 우습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