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 라는 종種은, 자타불문, 쾌 불쾌, 호 불호. 어느 편에 서 있든 신속하게 그리고 손쉽게 그 스스로의 입장을 합리화 할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믿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난처한 이들을 위한 항우울제의 구실을 해 줄 수는 있으나, 불행하게도 자기 자신을 위한 처방전은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내부에 워낙 다양한 입장과 처지가 혼재하기 때문에 골치아파 하지만, 단순하고 명확한 고민을 가진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엔 오히려 편안해 지는 사람이다.
그는, 끊임 없이 각 각 다른 위치에서 다른 방향으로 떠나려 하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그 스스로를 어딘가에 잡아 가둘 수가 없는 사람이다. 낙천주의자의 미소를 가지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엔 허무주의자의 한숨을 짓고 있고, 또 어느 순간엔 비관주의자의 냉소를 가지는 사람이다. 어떤 것 이든 긍정할수도 또 한편으로는 쉽게 부정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스스로의 입장과 의견을 달리하게 되고 어떤 결론도 확고하게 남길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앞에서도 다짐을 한다거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이다.
그가, 그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정신병자에 가까운 것인가? 아니면 그를 치료하는 심리학자에 가까운것인가? 내일이면 죽을 사형수에 가까운 것인가? 아니면 그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성직자에 가까운 것인가? 구호를 외치는 선동자에 가까운 것인가? 아니면 그가 서있는 단상 아래의 수 많은 군중에 가까운 것인가? 그를 규정 해 주고, 정의 내림을 통해 구제 해 주기엔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는 종의 개념이 너무 무디고 낡아 빠진 것은 아닌가? 이 시대의 인류학자들이 너무 게을러 빠진 것은 아닌가? 그것에 부합 하지 못하는 그를 위한 구제책은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