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생경한 이야기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만질 수 있다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정말 신비롭지 않니. 정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걸까?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야. 낯설음과 어색함에 대한 이야기이지. 나는 어쩌면- '너'의 얼굴을 보면서 미래를 새삼 깨닫게 될지도 모르고, 너에게 귀기울이지 않은 채 나를 구원하는 일에만 몰두할지도 모르고, 너를 만지면서도 절대로 닿을수 없는 너를 신비롭게 여길것 같거든. 이제 막 19세기의 망령들로부터 빠져나온듯 피곤하고, 이제 막 20세기의 따스함속으로 기어나온듯 너절한데, 미래이고 21세기인데다가 무한이기까지 한 너를 내가. 죽거나 잃어버리는 일없이. 나에게 복귀가능한 상태로. 얼굴을 마주한채 만나고 이야기하고 만질수있는것일까?

한편, 우리는 앉거나 누운채로 지금 이렇게 깨어있음을 불안해 하고있잖아. 이 무용한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견뎌내고자 있는걸까?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몰두하거나 관람할것 없는 절대적인 무료함 속에서, 너도 지금의 나처럼, 빛과 인식이 불가능한 이 어둠속에서 눈을 껌뻑거리며, 내가 참여하지 못하는 세계가 나와 상관없이, 아니면 끊임없이 관련하면서, 무無가 무無를 생산하며 그저 그렇게 <있는> 그 광경을 지켜본적이 있니? 바쁜 오후로부터 돌아와, 그저 그렇게 내가 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영원히 잠들수도 없고 영원히 깨어있어야할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그저 그렇게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공포스럽지않니? 어느날 태어나, 자라고,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어른이되고, 아버지가되고, 늙어 죽어가는것. 그토록 자연스러운 과정들에 대해서, 그토록 어려운 수사로 포장해야했을까. 구제불능. 그렇게 진화할수밖에 없는건가. 헛수고. 그저 먹고살기위한 방편에 불과한것. 그래- 언제나 극복해야할 대상은 바로 그 불과하다-라는 망할놈에 형용사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