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것이 영화처럼 정지된 장면들의 연속이고, 그 순간들의 집합이 우리가 살고있는 시간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마치 한 장의 사진을 손에 쥐듯 생의 낱낱을, 순간 순간을 포착하고 재구성 하는데에 장애가 없고 의심이 없는 자에게- 인생은 아름답다. 마치 일 천 조의 프레임으로 찍어내는 초고속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처럼, 그렇게 아름답다. 이것 다음에 저것이 이어지고, 저것 다음에는 그것이 이어진다 라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생生은 매 순간 낯설고 부담스러운 그런 메스꺼운 장소가 될것이다.
세상에는, 멀미가 날 것 같은 이 생生의 연속을 잘 견디어내는 튼튼한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그 지속됨이 환멸스러워 이따위의 것 그만두어야 겠다 라고 다짐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그 중간이 낫겠다며 손가락 끝에 잣대를 세워두고 우물쭈물대고있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균형 잡기위해 둥그런 깡통 위의 널판지 위에서 뒤뚱거리는 광대들처럼, 진지했던 나의 이십대 또한 그렇게 엎어지고 일어서고 미끄러지고 자빠지기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광대가 중심잡기에 성공하건 말건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배꼽을 잡고 깔깔댄다. 아무것도 모르고 진지하게 중심에만 몰두하고 있는 그 광대도 나요. 그것을 비웃는 관객또한 나다. 게다가 중심을 잡게 되는 것은 차라리 광대가 아닌 깡통 위의 널판지가 아닌가.
순대국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으면, 그 안에서 밥알이며 순대껍질이며 온갖 야채들이 뜨거운 국물과 입 속에서 한데 뒤엉켜 있을진데, 비닐 조가리라던가 작은 철수세미 조각같은 이물질들을 나의 혀는 잘도 골라낸다. 나의 뇌 속에도 마치 그런 예민한 혀와같은 기능을 하는 감각기관이 이상스레 발달되어 있어서, 매번 이렇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아내는 성미를 가지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관념적-혀에게 단 것은 쓴것이고, 쓴 것은 단것이다. 별스런 미각을 가진 그 혀는 단 것만 뱉어내고 쓴 것은 자꾸만 삼키려 든다. 그래서 탈이나는 게 어쩌면 당연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