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지금은 아마도, '나' 라는 지점이, 어떤 '작용'을 만들어내는 존재로서 기능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위험 앞에서 '불굴의 의지'로 그 것을 헤쳐 나가고 있다기보다는, 당장에 무장을 해제하고 손을 들어 그 것에 몸을 맡겨버리는 것이지요. 다가오는 위험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내부에서 생겨나는 가벼운 욕구들에서부터, 이런 저런 관계들 속에서 생겨나는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같은 일상적인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몸을 맡겨버린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욕구는 충족시키고, 부담은 덜어내고, 불안은 해소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저의 느낌에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처음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저 일련의 과정들이 오히려 저의 존재 자체가 대기중에 희석되어버리는 느낌입니다. 바람이 부는 언덕에 서 있을 때, 공기가 나에게 부딪치며 만드는 저항감이 내 존재감을 형성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내가 그 바람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바람'이라는 비유를 썼다고 해서 당장에 '자유'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우리는 그것을 '긍정'해버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저항하지 않으면 '나'라는 지점은 의미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저항이 사라지기 때문에 아까 말했던 그 '부담'이나 '불안'과 같은 무게감도 덜어버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나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바람과 같이 무심한 자연과 그 속에서 '나'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기 위한 저항 말이에요.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인간 대 자연으로서 말이지요. 타자를 전제한 싸움이 아니기에 그 저항의 끝에 이루는 혁명도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물론 허무할 수도 있고요. 그리 기쁘지도 않을 테죠. 내가 바람 속에 꿋꿋하게 서있다고 해서 지나가는 바람이 상처를 받거나 칭찬을 해주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여기서 괜히 스피노자나 들뢰즈를, 노자나 장자 이야기를 꺼내진 말아주세요. 저도 잘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