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파편적인 글 말고요

그리스 시대의 원자론자들은 과연 지금과 같은 극세極細-극미極微의 과학 기술의 발달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세상 모든 물질은 결국 쪼갤 수 없는 아주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을것이다.' 라는 말은 그저 어느 풋내기 백수가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던진 호언은 아니었을까? 전 세계 에너지를 다 끌어오는 한이 있어도, 기어코 그 궁극의 알갱이- 를 '관찰'해보겠다는 듯 혈안이 되어있는 지금의 과학자들을 보면, 음뭐랄까- 순진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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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울고 웃고 할 수 있는 그런, 우리에게 안전한 세계에 들어선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 세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해치거나 만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또 돈으로 사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무엇인가가 가득 찬 세계다. 세계가 내앞에 새롭게 들어선 것인지, 원래 있던 그 문에 내가 우연히 들어선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내 예감에 이것은 원래부터 있었으며 나와 더불어 자라왔다. 이 세계의 장점은, 서로 교감하고 있는 존재자들과 그런 일종의 접지상태를 그저 향유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서로 닿아 있지만 만지고 있지는 않고, 서로 교신하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이 세계의 성립-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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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나와 무관하지 않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말 참 멋있다 생각했다. 무관한 세계로부터 무관하지 않은 세계로 무한하게 열린다고 하는 이미지는 멋있다 생각했지만, 반대로 무한하게 희석되어 공중분해 된다고 생각하면 왠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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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것은, 타인들과의 상대적 구조속에서 항상 끝없이 해면을 이루고 출렁이는 일종의 면적. 공간에 대한 추상 일 뿐입니다. 자기동일성은, 그것들이 흩어지지 않게, 뜬금없이 불필요한 기억들을 망각해 나가며, 중복되는 상들을 통합해나가며, 스스로 나라는 이미지가 중첩되어 농도가 짙어진 하나의 겹쳐진 무엇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망각하고 통합해 나가는 그 주체가 당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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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한다기 보다는, 글쎄요. 작가 흉내를 내고싶은 것 뿐인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에 와서 우리가 할 수 있는건 흉내내기 뿐인지도 모르죠! 작가님 소리도 듣고싶은 것 같고.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산다죠. 풋- 가끔, 전시를 앞두고 있답시고 무슨 대단한 사업이라도 벌이는 양 투덜대고 있는 내 꼴이 우습기도 해요. 오! 어쩌면 이러한 자조섞인 멘트 역시시 '작가' 흉내내기의 한 방식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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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찾다보면,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그저 해야한다라는 주체 없는 명령들밖에 남지가 않아요. 살아야 한다 라는 것에서조차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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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빼기 나누기. 나에게서 다른사람들과 닮은 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누는거에요 나는 그들과 다르게, 계속해서 경계를 긋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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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한가요?"
"아니요 오직 잠. 뿐이에요. 잠을 잘때만 편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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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혼자 있으려고 하지만, 그리움 앞에서는 무기력해질 뿐이에요. 내가 죄라도 지었나요. 거절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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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글자를 처음 배울때, 종이가 찢어지고 연필심이 부러지도록 손가락에 힘을 꽉 주던 그런 모습처럼- 나는 아직 이 세계가 찢어지도록 선명한 뭔가를 새겨넣고 싶은 충동이 있는가보다. 누덕도사의 수제자 머털이가, 스승님 말씀을 거스르고 무술대회에서 재주를 부리다가 왕질악 도사의 전기 지짐이를 당하던 그 장면을 잊을수가 없다. 뭐 좀 알았다고 깨방정 떨지 말라는 중요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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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때에는 아무래도, 전류가 잘 통하듯, 각자의 AT필드가 허술해져서 마음과 마음이 더 잘 전해질 수 있는 장이 형성되는가 싶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낭만적일 뿐 실용적인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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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비극적 죽음에 너도나도 눈물을 쏟아내며 감추어둔 마음들을 드러내어 고해하는 장면을 보며, 중학교 1학년때 얼떨결에 따라갔던 교회 여름캠프를 떠올렸다. 너도 나도 갑자기 대성통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왠지 모를 두려움에 고개를 파묻어버렸던 그때 그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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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완전한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친절하고 진취적인 사람들과 헤어지고싶다
나를 아끼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떠나고싶다
모두로부터 외롭고 모든것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일수록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 처럼
베풀고 격려하고 사랑하고 내놓는다

안정적이고 건전한 생활로부터 도망치고싶다
계획적이고, 차근차근 이어지는 생활을 망쳐버리고싶다
뜨신 배를 두드리며 웃고있는 나의 모든 삶을 빼앗고싶다
언제 땅으로 꺼져버릴지 모르는 얇고 얕은 세상일수록
절대로 넘어지지 않고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처럼
안전하고 즐겁고 어른스러우려 한다

진지한 것은 낡고 촌스럽다
눈물은 진부하고 웃음은 헤프다
젊은이는 늙은이 앞에서 춤추고 노래한다
늙은이는 젊은 사람들 앞에서 혀를 차며 젊음을 동경한다
누구도 유일해서는 안되고 누구도 동일해서는 안된다
나는 언제나 소중하고 나는 어디에서나 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