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굳건한 사람들을 보면 늘 사랑에 빠진다. 감독도 연기자도 필요없는, 구경당하지 않아도 괜찮은 덤덤하고 시시한 그들의 문장들 속에서 질투를 느낀다. 어딘가로 도망칠 필요없어 일말의 초조함도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당연한 일주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항상 검고 매끈한 사람들과의 가졌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뒤늦게 그리워한다. 정떨어지게 아름다운 그들의 초연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그 앞에서 적당한 검정색을 찾지 못해 촌스러운 컬러를 택하고 말았던 나의 불안한 표정과 말투. 끝내 이색 저색 섞어보다 얼굴이 화끈거릴만큼 어정쩡한 회색으로 화면을 뭉게버리고 말았던 내 모습들. 그 모든 일들이 그리워진다.
검고 매끄러운 그 사람들을 떠올리다 보면 종종 아주 검은 색의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는데, 그럴 때면 오줌이 마려운 것 처럼 불안과 초조에 휩싸이고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검정색 안쪽으로 도망치듯 잽싸게 뛰어들어가는 나를 보게된다. 뒤를 이어 그를 따라 들어가는 또 다른 검은 그림자와 함께.
이 시시한 추격전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나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난 뒤, 이제 정말 아무것도 가장할 필요와 의욕이 사라진 어느 날, 비로소 외롭고도 굳건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나를 구경하던 또 다른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면서 부터 시작된 이야기.
눈구멍 뒷편의 눈구멍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도저히 관찰할 수 없는 무한한 검정 속으로 도망치려 한다해도, 아! 하면 아! 하고 따라붙고마는 특유의 탄성이 우리 둘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잦은 탈주와 추격으로 두 쌍의 눈구멍 사이의 유격이 헐거워진 탓에, 그 자리에 멈추어 있더라도 쫒고 쫒기는 모양새로 정지해 버린다.
그래서 아주 검고 멋있는 그림을 떠올릴때면, 아주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더라도 늘 착란상태이다. 가장 시끄러운 음악과 가장 조용한 음악을 분주하게 번갈아 재생시키며, 가장 추잡한 것들과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번갈아 생각해 낸다. 불을 모두 껐다가 금방 다시 켜고, 모든 것에 무심했다가 금방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