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에 들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근에는 철학코너 이외에 경제쪽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최근까지 다녔던 회사에서 친했던 이과장님이 주식 공부 좀 해보라- 해서는 아니고, 순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에서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이딴식인가?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식이랄까. 자본과 경제지표가 지금의 세상을 읽는 핵심이라는 정도는 진즉에 알았지만, 그동안은 왠지 나같은 사람은 ‘세상물정에 밝은’, 혹은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것들에 무지한 것이 작가로서 순결(?)함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에 대한 최초의 진지한 관심은 들뢰즈를 읽게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가치들이 자본으로 환산되는 이 시대에, 애초에 채워지지 않을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갈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숙명에 대해 비장하게 이야기하던 대목에서 뭔지모를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투덜투덜 불평만 늘어놓을 수는 없기에 좀 더 공부를 해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 한국에도 다녀간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겨, 최근에는 몇몇 책을 기웃기웃 들춰보기도 했다. 세계적인 불평등, 상위 1%에 집중되어있는 부, 그리고 점점 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백여년 간의 세계 경제 통계을 근거로 증명해내는 것이 그의 책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런 불균형에대한 대안으로 고소득자에대한 과세, 상속세에 대한 누진세, 등의 실질적인 대안(하지만 여전히 현실성 없는)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다.
거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나같은 그림팔이(혹은 월급쟁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상위 1%와 상대적으로 열악한(?) 나의 경제적 수준을 비교해 볼 엄두도 나지 않을 뿐더러, 그럴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다. 또한 이 전지구적인 현상 - 정부의 철저한 기획 하에 점점 더 심화되고있는 듯한 - 을 뒤집어 엎어봐야겠다는식의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수년 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었던 아랍의 봄 시위나, 뉴욕의 ‘월가를점령하라’, 등의 운동들이 그 어떤 가시적인 결실을 맺지도 못하고 정말 ‘운동’에 그친 채 사그라든 것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한 가지만 약속해달라. 여러분은 수십 년 후 맥주나 홀짝이면서 ‘그때 우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웠지’ 라고 말하지 말아달라”
- 슬라보예 지젝이 ‘월가를점령하라’ 운동에 참여하며 남긴 당부의 말
그렇지만 기왕(?) 이런 세상에 태어나 살며 겪고 있으니, 이런 세상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되는 것은 당연지사. 혁명까지는 꿈도 꾸지 않지만, 그림을 그려 먹고살겠다고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불평을 어떻게든 내식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게 소용없다면, 하다못해 비탄에 빠진, 혹은 그러한 일들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그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