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습관

언제나처럼 나는 나에 있다. 나로 있는 일이 점점 힘들게 느껴진다. 온몸의 근육들이 딱딱하게 굳어있고 잘 움직이지 않는 탓에 온몸이 무겁다. 누워 있으면 그나마 견딜 만하다. 이 거대한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니 온갖 구실을 다 동원해서라도 다시 꿈속으로 돌아가고만 싶다.

이 몸을 짊어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 오늘 꿈이 무척 중요했다는 핑계를 대고는 다시 꿈속으로 빠져든다. 부산한 소리에 눈을 다시 뜬다. 다시 나에게 돌아와 있다. 큰마음을 먹고 침대 위에 돌처럼 굳어버린 몸을 일으켜 본다. 머리가 어질 하지만 좀 더 힘을 내어 일어서 기지개를 켠다.

내가 나에게 있음이란, 그렇게 무게를 지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너무 의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곳에 있음을, 내가 나로 있음을 습관처럼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그렇지 않으면 갇혀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져 다시 잠에 빠지거나, 계속해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토마토 스파게티. 예를 들어 우리는 토마토 스파게티로 도망칠 수 있다. 토마토 스파게티를 냄새 맡고 맛보는 행위는, 나를 잠시 몸이라는 감옥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준다. 빠져나간다기보다는 사실 갇혀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것뿐이다. 토마토 스파게티를 씹는 동안 혀로 느껴지는 그 맛이 나를 토마토 스파게티로 들어가게 해 준다. 맛의 향유가 끝나면, 다시 권태가 시작된다. 여전히 내가 스파게티가 아닌 내 안에 있음을 자각한다. 나를 던져놓을 대상이 또다시 필요한 순간이다.

컴퓨터를 켜고, 미뤄 둔 편지들을 확인한다. 회신해 줘야 할 메일에 답을 하고 내게 주어진 질문과 요청사항들을 검토한다. 능숙하게 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컴퓨터 화면을 조작한다. 익숙한 것을 조작하는 일은 나를 고양시킨다. 내 손이 모니터 화면 넘어 연결된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내가 나를 넘어서는 듯한 그 느낌 때문에 나는 또 잠시나마 몸이라는 한계를 잊는다. 그마저도 몰려드는 피로감에 금세 나 자신에게로 주저앉고 싶어진다. 이제는 그만 나에게로 돌아오고 싶어진다. 벗어나고 싶다가도 돌아오고 싶은 것이 내가 나에게 있음의 또 다른 성격. 지긋지긋한 기분에 떠나고 싶다가, 너무 편하고 익숙해서 언제나 돌아오고 싶기도 한 그런 장소가 바로 나인 것이다.

그렇게 내가 나에게 돌아오고 싶은 기분이 들면 산책하러 나간다. 그대로 있다간 또 나를 잊기 위한 잠으로 귀결되고 말 테니까.

산책길에는 빛이 나를 나로부터 꺼내어 준다. 반사되어 반짝이는 다양한 색채와 빛과 어둠이 만들어 내는 형태들이 나를 황홀케 한다. 그렇게 눈으로 빠져나간 나는 꽃 위에 닿았다가 구름에까지 가 닿기도 한다. 보는 행위는 쉬이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해가 저물면 그만둘 수밖에.

밤이 되면 종이를 펴고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그림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잊어버리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는 내가 나에 머무른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다. 대상을 누리고자 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을 창조해야 하는 것도 나이기 때문이리라.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나를 떠나지 않고 나의 피로를 느끼며 내 안에 계속 머문다. 하지만 그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몸이 나를 자꾸만 끌어내려 잠 속으로 유인한다.

잠 속에서는 내가 나를 잊으려는 노력조차 필요하지 않으니까.

습관적으로 나는 다시 내 안에 머물기를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