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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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권태에 대해 누가 알아줄까. 권태에는 게으를 태怠자가 있으니 배부른 소리라 욕먹기 딱 좋다. 사람들이 권태를 잊기 위해 하는 일들이란… 오락, 창작, 관계 맺기, 여행, 자기기만… 다 망각을 위한 행위들이 아닐까… 권태는 게으름에서 오는게 맞다. 더 많은 변화와 가능성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일이다. 변화와 가능성은 도처에 있으니까… 다른 일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아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한발 물러설 마음이 있지만, 권태에 대해서는 ‘야, 너는 암 것도 몰라 이 자식아'라고 꼰대같이 소리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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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중에서도 가장 못된 교육은,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강박을 심어주는 교육이 아닐까. 사람이 살며 ‘올바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까. 이왕 교육이란 것이 필요하다면, ‘착한'사람이 되기위한 훈육과 더불어 ‘올바른 나쁜 사람 되기’에 대한 교육도 시켜주는 건 어떨까.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하겠지. ‘착한 나쁜사람’은 형용모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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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방랑이란 가능할까. 목적지 없이 떠돌 수 있을 만큼 내가 강건할까. 집이 없어 끊임없이 신세 지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을 과연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권태는 목적지 없이 계속해서 떠나는 것만으로 극복될 수 있을까.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처분하고도 허무를 느끼지 않을 만큼 방랑은 좋은 것일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서는… 방랑은 가능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