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세계

너는 떨어진다

붙잡지 않고 서로를 놓아 버린다
손끝에 힘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힘을 다해 붙잡지 않는다
네가, 아니면 내가 추락한다
내가 추락하는 편이 나아
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내가 살고자 했으니

너는 멀어진다

너는 내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진다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진 너를 그저 바라본다
손가락 끝에 일그러진 표정 같은 건 볼 수 없다
그저 상상할 수 있을 뿐
네가 아플 때 짓는 표정과
네가 울 때 내는 소리가 귀에 익어
내 새끼손가락이 갓난아이처럼 우는 것 같아
그 울음소리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보이고 들리는 듯하다

나는 남겨진다

홀로 일어서는 장면을
홀로 거닐며 빛을 맛보는 장면을
홀로 세계에 대해 마음속으로 떠드는 장면을
셀 수 없이 상상해봤으면서 
그것이 가능한지 귀를 의심하고 눈을 의심한다
세상은 아름답고 적막하다
세상을 바라보며 나는 아- 하는 소리를 낸다
소리는 반향없이 그대로 퍼져나간다
세상은 나의 감탄을 그저 듣는다
감탄을 듣는 세상은 아름답고 적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