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정체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인가. 좋은 것을 창조해내지 못한다는 불안일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불안일까. 이 불안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면, 이 불안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불안을 있는 그대로, 불안한 상태 그대로를 묘사하고, 어떤 사람은 불안함의 본질에 대해 묘사해 낼 지도 모른다. 불안함의 본질은, 어디서 오는가. 내가 아무 쓸모 없다는 생각이 불안의 근원인가.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고, 무엇을 하려고 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상태는 어떤 것인가.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인가. 다시 시작한다. 이 불안은 일곱살 어린아이같아서 내가 그로부터 시선을 거두어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에 나, 불안이 있으니, 나에게 집중해라. 너는 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듯 하다. 이 불안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이곳엔 나 혼자 있으니, 이 불안은 나로 인한 것이 틀림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 불안이 타인로부터 묻어은, 타자가 나에게 남겨 놓은 흔적, 그가 나에게 떠넘긴 사생아, 나의 책임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실제하지 않는 관념이 나를 지배한다는 생각이, 그에 내가 복종하고 무기력하게 늘 좌절하고 만다는 사실에 허탈한 기분. 나는 더이상 나의 주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떤 기분인가. 나는 그런 기분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혹은 사실 아주 어려서부터 이런 상태였는가.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두우면 불을 켜야하고 불을 켜면 꺼야만 하는, 자려고 누우면 잠이 오지 않고, 일어나면 다 그만두고 잠들고싶은 그런 불안, 사람들 곁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는 혼자있고 싶고, 또 혼자 있을 땐 외로움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이것을 원하다가 저것을 원하고, 또 저것을 원치 않다가 이것을 원치 않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또 끊임없이 원치 않는, 사실은, 그러고보니, 내가 그린 첫 그림도 그러하였다. 원하고 원치 않는, 도움을 바라면서 바라지 않는. 그 모순.된 감정. 그렇다면 다시 또 나는 전혀 개선되거나, 나아지거나, 발전하지 않은 것인가. 왜 나는 그대로인가. 왜 나는 이 상태로 돌아오고자 했는가. 어쩌면 처음 그렸던 그 그림을 다시 그려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 불안의 정체는 전혀 새로울 것없는, 익숙한 것. 나는 틀림없이 이 기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오후가 된 것을 알게되면, 진홍빛의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행복한 기분이 들다가, 이내 다시 불안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