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11시 30분. 카페이리 에서 나오는 길에 누군가로부터 알수 없는 아홉개의 단서가 적힌 쪽지를 전달 받았다. 아홉 개 중 다섯 개의 단서는 이해 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네 개는 알 수 없었다. 정말로 등뒤에 난 구멍을 통해 누군가가 날 감시하고 있었나보다.
모피어스이든, 회중시계를 들고 말하는 토끼이든, 아니면 무스타파 몬드이든. 누구든 좋으니 내일 또 다시 나타나서 내게 이렇게 말을 해주면 좋으련만. You must be feeling a bit like Alice, tumbling down the rabbit hole? 그러고 나서 그가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주면 난 분명 빨간 약을 먹고 말테지.
정말 알수 없는 일이군.
가히 기록적인
오늘은 기록적인 시간 동안 한 곳에만 머물러 있었고, 그 기록적인 시간 동안, 네 권의 책을 쉬지 않고 읽었고,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는 내 정신사적으로 꽤 기록적인 인물이 되었다. 한편, 그 것과는 무관한 엉뚱한 내용의 글을 기록적인 분량으로 써 놓았지만. 그 기록적인 글이 그야말로 기록을 위한 기록이라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그것에 도취된 꼬락서니란- 쯧.
진정 살아 본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모를 인생에 결정적인 날들만 수두룩하다. 기념비적인 전환점, 인생의 터닝포인트 따위는 이렇게 자주, 나타나서는 안된다. 지난주의 김대현씨이든 어제의 김대현씨이든 혹은 조금 전의 김대현씨이든 자꾸만 결별을 선언한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Czars, Beck, Daftpunk
3월 말, 4월 초 발매 된, 따끈따끈한 The Czars와 Beck과 Daftpunk의 신보들을 구입했다. CD를 받아들고 비닐을 벗겨내고- 재킷을 뒤적거리는 기분이 남다르다. 마치 LP판이, 카세트 테잎이 낯설게 느껴지던 어느날 처럼 CD라는 매체에서도 벌써 향수를 느끼고 있다면 과장이 심한걸까. 어쨌든 진심으로 오랫만에 반가운 친구 소식을 듣는것 처럼- 잊고 있었던 아티스트들이라 그랬는지 포장을 뜯는것 만으로도 괜히 너무 흡족했다.
Beck을 듣고있으면- 비플라이와 홍대근처 어느 바- 에서 벡스다크를 기울이다가 공교롭게도 그 순간 흘러나온 Looser- 에 열광하던 그때의 취한 기운이, 거금을 주고 구입한 그라도랩 헤드폰을 테스트 한답시고 귀가 얼얼하도록 듣던 Peaches & Cream이 생각나기도 한다.
Czars를 듣고 있으면- 2년 전 이맘 때, 차가운 스탠드 불빛과, 책상 위에 붙어있던 작은 스티커, 연필깎기, 마우스패드의 촉감 따위가 떠오른다. 그리고 엣지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나긋나긋 하면서도 애틋했던 Killjoy, 그리고 듣고 있으면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던 Drug이 생각난다.
Daftpunk를 듣고있으면- 오랫만에 디디를 만났던 오래전 그날- 지하철역 까지 디디의 차안에서 처음 들었던 Digital Love가, 메트로에 처음 씨디플레이어와 덩치 큰 스피커를 달았던 어느 날- 강변북로를 달리면서 들었던 Something About Us가 떠오르기도 한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내 감성이 변한걸까, 아니면 그들의 감성이 변한 탓일까. 신보를 구입했으면서도 자꾸만 예전 앨범의 트랙들을 뒤적거려 다시 듣고있는 걸 보면, Beck도 Czars도 Daftpunk도 나를 오래전 그날 그때의 감정들로 돌려놓지는 못하나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daftpunk의 Robot Rock은 눈을 잔뜩 찡그리게 만들만큼 멋지고. Beck의 Que Onda Guero에는 더스트브라더스의 비트가 감칠맛 나게 녹아있고. Czars의 존 그랜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애틋하다. (y) 조만간 홍대에 나가봐야 할까봐-훗
manchmal
조깅이라는 건- 그저 달린다 라는 것 이외에 상징하고 있는것이 꽤 많아서 그런지. 그저 일년에 한 두 번 일지도 모르는 연중행사가 된다 해도- 마치 매일 아침 조깅하는 사람들 처럼 그럭저럭 뿌듯 해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홀로 공원을 찾아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엔 그 모습이 꽤 사색적 이기도 하고 로만틱하기까지 해서 흐뭇해 하다가도- 막상 달릴 때엔 금방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기분이 남다르다. (물론 평소에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 이제 겨우 오분 쯤 뛰었을까 싶은데도 마치 새로운 나로 태어났다는 듯 감격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너무 뿌듯해서 같이 달리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라도 건내야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뭐- 난 항상 그런식이었던 것 같다. 몇 달 째 지지부진 하고있는 독일어 공부도, 아주 가끔 의지에 불타올라 이제 겨우 십분쯤 한문장 해석해 놓고는 마치 이미 독일에 와 있다는 냥 허공에 대고 "아웁비더제헨-" 을 외치며 의기양양 해져버리는 그런 코미쉬한- 녀석인 것이다. 근면성실함은 모자라도 대체로 낙관하는 삶- 쯧.
어쨌든 공부도 하고, 조깅이라는 것도 해보았으니- 지금 당장 잠들어도 원이 없으려나. 괜시리 하루키처럼 멍한 표정이 되어 아침마다 조깅 따위나 하며 사는 삶을 상상 해본다. 하암- 뭐 이런 글이 되어 버렸담. 일기쓰니-
Losel versus Loser
혼났다. 내가 인생의 패배자라고 여기고 있었던 사람으로 부터. 그로부터 혼이 났기 때문에 그가 패배자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이미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그는 나에게, <적어도 이렇게는 살지 말자> 라는 슬로건을 제시해 주는 듯 살고 있었고, 그 것을 위한 훌륭한 표상으로서, 이미지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주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어느날 <너의 삶은 틀렸다, 모두가 그런 너를 싫어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고약한 이야기를 전격발표 수준의 목소리로 들려준 것이다. 표상으로서의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나보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자신이 것이 아닌 생에 대해서 잘못 되었다고 단죄하고 꾸짖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가 나의 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정말 잘도 말한다. 아마도 내가 한 평생 살고 난 후, 인생을 후회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마도 <어떡하죠? 전 인생을 잘못살았어요, 그 때 당신 말을 들었어야 하는건데>라는 고백을 듣고 싶은 것이겠지. 아니면, 한 오십년 뒤에, 내가 그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얘기한다면 그는 뭐라고 할까? <당신 말대로 나의 생 방식을 바꾸었더니 행복하지 않더군요. 그러니 기만 당한 내 생을 돌려주시오. 당장!>
그의 말에서, 그가 자신의 삶을 살며 사회적인 규범이나 일반적으로 얘기 되어지는 도덕률과 절대 선 이라고 통용 되는 가치들에 대해서 신앙 처럼 믿고, 복종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다. 하지만 그가 치명적인 악취를 풍기는 대목은, 자신이 신봉하는 그 숭고한 계율과 지침들을 이야기 할 때에, 그 말 자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권위와 존엄성을 마치 즉석에서 모조리 획득 했다고 착각하며 기고만장한 태도로 돌변하는 부분이다. 혼자서 썩고 곪는건 좋은데 그 냄새나는 입으로 <니가 아직 어려서 그래> 따위의 얘기는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나의 부도덕함이, 나의 나태함이, 나의 목적 없음과 계획 없음이 마치 자신이 속한 세계의 성스러움과 고결함에 한점의 불순물이라도 된다는 양 이야기하는 꼴이란... 나 따위가 그의 신앙심과 당신의 그 고결한 가치체계를 전복시킬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을. 제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는 아마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가치들은 이미 고래로 너무 너저분하게 많이 이야기 되어져서 특별히 그가 친절히 이야기 해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 없다는 사실을.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가 듣기엔, 이미 너무 많이 <나 다운>것을 포기해야 했던 세월에 대한 열등감이고, 자신이 그 동안 받아들이기만 했던 그 가치들의 바짓가랭이라도 꽉 움켜쥐지 않으면 설 곳이 없어서 두려움에 떨 때에 내는 소리이다. <너, 우리 아빠가 얼마나 힘이 센줄 모르지?>의 심보랄까.
누가 모르겠는가,
그 가치들을 쳐부수기에 그것들은 이미 너무나 완고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 가치들이 전복되기 위해서는 수 세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 가치들에 반기를 드는 것 보다,
그 권위 위에 슬쩍 올라타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내가 시험하고 있는 모든 가치들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평생을 두고
후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뭔가 착각하고 있다. 내가 지탄을 받고 비난 받길 원한다면, 날 탓할 것이 아니라, 나 같은 녀석이 도태 되지 않고, 오히려 어떨 때에는 환영 받기까지 하는 그 시스템을 탓해라. 아니면 내 올바르고 행복한 생을 위해 매달 기부금을 내시던가.
너무 애 처럼 징징거렸나? 누가 보면 살인이라도 저지른 줄 알겠군.
주머니 왕국
문득, 오래전에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던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그 누군가가 나를 전적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적극적으로 싫어했다.
문득,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어떤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이야기가 전적으로 오해일수도 있다는 것을 그 누군가가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내 자신도 적극적으로 싫어해야 할까 잠시 생각해봤다.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것들에 대한 혐오감이 모두 다시 다시 나 자신에 대한
혐오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꼭 지방흡입시술병원에서 지방을 훔치려다가
질질 흐르는 노란 기름을 뒤집어쓴 Jack 같다, 잭같다.
"이곳에서 사느니 죽어버리겠다." 오랫만에 다시 읽어본다.
자유정신, 병적인 고립, mater saeva cupidium, 엄청난 해방, 이런 것.
새로이 고안해내지 못할 바에, 흉내내려 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가 두려워 했다면 무엇을 두려워 했을지 내 마음대로 생각해본다.
don't you worry- about what you done-
존 레논이 뭐가 좋은지 계속 깔깔諛?웃는다. 젠장-
문득 오래전에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던 그 이야기
제발 호주머니 속에 꽁꽁 숨어있지 말고 나와!
그 호주머니가 몇년 사이에 왕국이 되어버렸다.
Silly Ugly
개의 내장을 해부하는 어떤 박사님 보조로 한참 동안 예쁜 개들을 해부 하다가-
아버지가 만드셨다는 아주 오래된 어떤 문 으로 다다르는 계단을 만들다가-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의정부를 홍보하는 TV광고를 보다가-
기다리고 있던 한통의 이-메일을 이미 받아 보고나서-
꿈에서 깨었다.
그 개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그 박사가 개의 어느 부분에 칼을 넣어야 한다고 했었는지-
아버지가 만드셨다던 그 돌로 만든 문이 얼마나 좁은 모양 이었는지-
그리고 그 곳 까지 올라가기 위한 계단은 어떻게 만들기로 했었는지-
의정부 홍보영상을 보며- 나의 사촌이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빈정댔었는지-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어떤 기능을 발견했다며 보내준 친구의 이메일에 그려진
아트웤 하나하나가 모조리 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참 우스꽝스럽고 불쾌하고 상징적인 그런 꿈
Across the Brave New Year
이천사년과 이천 오년이 들으면 화나겠지만-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단 삼백 육십 오일의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유일한 순간은 이천사년 십이월 삼십 일일과 이천오년 일월 일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찬란한 경계를 외면한 채 이천 사년이든 이천 오년이든 전혀 의미가 없는 세계를 방금 다녀왔다. (잘 잤다는 이야기;;) 예전에는 적어도- 십이월 삼십일일엔 가족들과 둘러 앉아서- 한번도 시도 해 본 적 없어서 어색하기만 한 따뜻한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던가, TV에서 이원 생중계 해주는 보신각 타종 소리에 맞추어 '브라보-' 라고 외치며 잔을 부딪치곤 했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전화기도 꺼둔채- 그 시간 동안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작년과 달리... 아니 재작년과 달리- 내게 있어서의 변화의 또다른 증거는 아마도 그 경계 무시하기 와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기는 동안 만들어지는 경계, 혹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떨어져 나오며 만드는 경계, 한 달 동안 세상과 단절되며 그었던 경계, 또는 친구와 연인이라는 관념적 경계에 이르기 까지, 억지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겪은 한 해 동안의 일들에는 다양한 형태의 경계선- 혹은 엣지- 가 포함되어 있고- 그 사건 모두의 공통점은- 마치 이천사년십이월삼십일일의 종로가 시장바닥처럼 복작대는 것 처럼 사람들이 모인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누군가의 엣지에- (엣지와는 관련없음) 끊임 없이 살을 붙여 가십 거리를 만들어내고- 가뜩이나 사건이 없어 심심한 현대인들에게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그 가십거리들은- 해묵은 상상력이 가미되어- 하나의 사건으로 포장되고 귀에서 입으로- 입에서 귀로 전해진 그 잡스런 이야기가 다시 내 귀로 흘러들어온다. 마치 앨리맥빌- 에 나오는 일레인 처럼 '엿듣고-소문내기'의 프로세스를 촌스럽게 대놓고 수행하는 이들은 없지만- 그보다 더 혐오스러운 것은, 마치 관심 없는 척- 듣고서는- 약간의 비아냥을 보테어 떠들어대는 것- 흠 마치 일간지에 매일같이 스캔들로 오르내리는 연예인의 이야기 처럼 무슨 대규모 팬클럽을 거느렸다는 듯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역겨워 보일지모 모르겠다.
외부의 단 한명 이라도 내게는 위험한 군중이 될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오만한 꼬마가 점점 자라나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어머니가 화난 목소리로 전화하신다.
아무튼- 오늘은 일월 일일이다.
Art Blakey & Jazz Messengers
음악은 항상 이런식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내가 먼저 찾아가는 수고 없이도, 너무 고맙게도- 적절한 시간에 나타나준다- 어찌된 일인지- 누굴 찾아가 고맙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앨리 맥빌 시리즈 처럼 지루하지 않게 매일 새로운 사건들이 나타나준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쏙 드는 음악들을 언제나 끊임 없이 만나게 되는 일들은 언제나 그렇지만 신기할 따름이다- 어딘가 스크린 뒷편에- 썩 괜찮은 사운드디렉터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CD를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김대현의 띰-송을 매일 매일 골라내고 있는건 아닐런지- 앨리처럼 순진한 상상을 해보기도-
좀 작위적인 생각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어느정도는 맞는 이야기. 난 어딘가 정착할 음악이 없는... 뭐랄까- 고등학교 때 부터 줄곧 이어져 왔던 청취편력이 요즘처럼 곤란을 겪는 시기엔 정신적으로도 좀 불안해진다는 게 사실이다. 어릴적부터, 마치 눈부시게 맑고 투명한 어떤 날 아침처럼 내 주변이 너무 선명해서- 한가지에 집중하기 힘들 때엔- 썬글라스를 쓰는 기분으로- 큼지막한- 헤드셋을 머리에 슥- 얹어놓으면 금방 안정이 되고 몇시간이라도 집중하기가 좀 더 쉬웠던 것이다. 좀 웃긴 얘기지만 한참 공부할 입시철에- 엠씨스퀘어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던게 마릴린 맨슨이나 RATM이었다니 지금생각하면 좀 재밌다.
연말은 이렇게 박력있는 미스터 블래키- 씨의 아트- 를 들으며 보내면 딱 좋겠다 싶다- 어딘가 모르게 하루키와 커넥션이 있는 것 처럼 여기저기서 검색이 되지만- 에음- 누군가를 만나보기도 전에 바이오그라피- 따위를 뒤지는건 영 적성에 맞지 않는다. 큰일이군. 독해는 언제한담-
Brave New World
"마음대로 하게" 하고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Feeling
금요일 오후 4시 30분.
겨우 눈을 떴지만 마치 영원히 계속되는 주말 처럼 아무 걱정도 후회도 없다
여유 라는 것이 꼭 자신감이나 확신에서만 오는 것만은 아니다.
상실감이나 체념으로 부터 갖게 될 수도 있다.
금요일 오후 5시 20분,
뭐랄까 일말의 불안이나 걱정 없이 멍한 눈빛으로-
아주 건강한 목적을 요구하고, 그 요구를 쉽게 들어준다.
어두워- 그럼 불을 켜. 목이 말라- 그럼 물을 마셔. 배가 고파- 그럼 뭘 좀 먹어.
금요일 오후 6시 10분,
무슨 일 때문인지 신이난 얼굴의 어떤 택시 기사가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한다.
택시 기사에게 묻는다 - 오늘 정말 눈이 왔었나요?
누구의 목소리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촌스러운 카 오디오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 가 흘러나온다.
금요일 오후 6시 25분,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 drops
Away above the chimney tops
That's where you'll find me.
따뜻하다.
망할 Beamte
겨우 두줄 독해하는데에 한시간이라니-
nach는 3격지배 전치사이고 첫번째 의미는 나라 도시로-, 두 번 째 뜻은 애프터-, 세 번 째 뜻은 어바웃, 네 번 째 뜻은 어코딩 투, 뒤에 나온 3격 명사엔 관사가 없는데다가 형용사 어미가 에엔 이므로 이 명사는 복수형이다. 그렇다면 단수형은 -에 로 끝나던가 -에엔으로 끝나던가 에엔으로 끝나면서 움라우트까지 있는 명사일 수 있다. 문맥상 nach는 어코딩투의 의미로 씌이고 있다.
꼭 무슨- 앞마당에서 땅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한 삼천년전 쯤의 종이 쪼가리에 적혀있는 고대 언어를 해독하는 기분이랄까. 시덥지 않게 우체국 이야기- 일 뿐이지만, 적어도 그 말로만 듣던- 문헌학이는게 이런 짓 아니겠어? 과연 내가 정말 1년뒤에- 이런 지독한 언어를 구사하는 고대도시에 뚝 떨어져서 살 수 있을 것인가? 라는 행복한 의구심을 품은 채- 뵈르터부흐를 뒤적거리고 있다.
그런 성향이 없지 않아 있다.
같은 교실, 같은 강의실, 같은 직장에- 진정 무엇인가에 지독하게 빠져있는 녀석이 있다면, 게다가 그 무엇이 내가 지향하는 바와 같을 경우- 나?모르게 끌어오르는 그런 기운이 있다. 그것은 마치 삼국지 5, 라던가 심시티, 때로는 가볍게 페르시안 왕자 따위가 제격인 486 컴퓨터에서 리니지2 같은 고사양 온라인 게임을 어떻게든 해보려는 절박함 이기도 하고, 트래픽 과열로 오버히트 되건 말건, 마더보드가 망가지던 말건 일단 인트로무비라도 보겠다는 무모한 승부근성 이기도 한 욕심이다. (라이벌에 대한 경쟁의식 을 말하려는 것이었다 -_-)
그런 승부근성이- 어떤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몸도 좋고, 농구도 잘하고, 스타크래프트 까지 잘하는 그런 녀.석. 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근래에 들어선 좀 더 무모하게 게르만 민족 전체와 어떤 쇼부 しょうぶ 를 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독해는- 바로 게르만 민족과의 일종의 소리없는 전쟁인 것이다. The pen is stronger than the sword 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뭐 예를들자면 이런식이다.
욘석들아! beamten의 수동형은 분명 beamtet이고 1격 형용사 어미는 der beamtete 이어야 하거늘- te와 te가 겹치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하나를 지운다고? 어이없네- 아니 그럼 여성형도 die beamtete 여야지 뜬금없이 또 die beamtin이냐고!! 이-씨! 이놈들. 으휴- 망할놈의 Beamte 공교롭게도, 부지불식간에 '망할놈의 공무원' 이라는 말이 되버리는군?
오늘의 교훈
'어-어 나 요즘 왜이리 일을 안주는지 몰라-, 병특은 병역특례복무규정에서 특별한 사유없이 퇴사시키는건 금지되어 있는데- 설마 날 자르려는 건 아니겠지?'
'어휴- 일이 없어서- 회사에서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어- 아르바이트를 하자니- 좀 너무 뜬금없고, 독어공부를 하자니 정말 일 없는 애 처럼 보이고- 오늘은 정말 팀장한테 일 달라고 졸라봐야겠어-'
만약, 월요일 비딩탓에- 주말내내 불철주야 육신의 노곤함조차 잊은채 프로젝트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일순간- 아무런 도덕적 여과없이 살인충동을 느낀다거나, 이런 반응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이놈!' 이라고 타이핑 한 다음 :@을 카피앤 페이스트로 10초쯤 누른 다음 오른쪽 새끼손가락으로 엔터키가 부서져라 누르는 그런- 반응.
뭐- 사실인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누군가 약올리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공교롭게도(이 단어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저런 이야기를 하고나면 그 즉시, 오른쪽 아래 시스템 트레이에 메일이 왔다는 신호가 오고- 확인 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열어보면 그 메일은 꼭 업무요청 메일이다.
'어- 음 나는 좀 천성적으로 내장기관이 튼튼해서- 평생 별로 소화가 안된다거나 한적은 없거든- (그래서 아무거나 잘먹어)' 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 주에는 물만 마셔도 속이 더부룩 하고 설사 기미가 보인다.
그렇다- 공교롭게도, 두 일화는- 한 백년 뒤엔 간결한 속담, 내지는 관용어구로서 자리를 잡게 될지도 모를만큼 우화로서의 플롯을 너무 잘 갖추고 있는 데다가- 약 올리면 벌받는다- 라는 뚜렷한 '권선징악' 의 모랄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좀 진부한 소재이긴 하지만, '난 맥주 1000cc 정도 마셔도 음주단속 안걸리던데?, 괜찮겠지 뭐-' 라며 돌아오는 길엔 꼭 어디선가 그런 나를 약올리듯 발광봉을 흔들며 맞이하는 경찰들이 보이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줄무늬와 카키색코트
2004년 11월 13일 15시 45분
무교동 스타벅스, SFC 건물을 바라보는 창가쪽, 왼쪽에서 다섯번째 테이블.
왠지 이런 말투로 시작해야 할 분위기로, 뒷자리에 앉은 연인의 대화 엿듣기.다소 뚱뚱한 체격으로 서른 즈음 되보이는 남자는 잘 정돈된 색상의 스트라이프 무늬의 니트를 입고서 한쪽 다리를 비죽 내민채 잔뜩 편한 자세로 앉아 있고, 그 반대편의 여자는(사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두운 카키색 롱코트를 입은채 가슴 안쪽으로 팔장을 꼭 낀채로 테이블에 상채를 기댄 채 남자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있다.
줄무늬가 비죽 내민 뚱뚱한 다리를 건들거리며 말한다.
"난 혼자다니는게 더 편하던데-"
카키색코트가 잔뜩 얼굴을 찌푸려 동정하는 눈빛으로 얘기한다.
"맞아, 혼자 밥먹고 영화보고 하는게 다른거 신경쓸 필요도 없고 훨씬 편해"
줄무늬가 좀 더 자신있게 이야기 한다.
"그래- 그렇다니까, 근데 사람들은 혼자 밥먹는다고 하면 너 왕따 아니냐? 라는 식으로 생각하잖아-"
카키색코트가 안절부절 못하는 듯, 좀 더 적극적인 말투로 공감한다.
어쩌면, 그 곳 스타벅스에 혼자 와서 죽치고 앉아있는 나같은 이들을 보고나서 떠오른 화두였을지도 모른다. 애니웨이- 무슨 필터를 귀에 장착하기라도 한 것처럼 왜 유독 저 이야기 속에 저만큼만 귀에 들어왔을까? 왜냐, 언젠가 나도 누군가와 거의 비슷한 레파토리로 이야기 했었던 것 같았으니까. 그래 저 대화에 이름을 붙이자면, '고독한 자아의 매력' 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저 줄무늬와 카키색코트는 더 나아가, '홀로 유기된 자아'에 대한 이야기, 더 나아가 외로움과 허무를 공감하고 '믿음의 부재' 라는 최종의 이데아에 도달한 다음- 그것에 대한 치유로써 너(카키색코트)와 나(줄무늬)는 존재 의미가 있다 라고 빠르면 오늘 저녁에라도 모종의 합의에 다다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뭐랄까- 일전에 비포오선셋을 보면서도 어렴풋 느낀 점이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믿고있던 누군가에게서- 아니, 다시 좀 더 까놓고 얘기해서 나와는 수준이 다른 사람이라고 믿고있던 누군가에게서 나와 같은 생각과 의지, 계획 들을 발견하게 되면 내안의 뭔가가 허물어지면서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한 없이 유리된 외로운 개체로서의 자부심 같은것이 손상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글쎄, 오늘은 우울이라는 단어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가 궁굼했던 것 보다 '공감'이라는 것이 진정 쾌인가 불쾌인가? 라는 문제가 더 궁굼하다.
점점 더 숨고, 내색하기 싫어하며, 성을 견고히 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런 순간에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런 쾌, 불쾌가 볼품없는 허영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 그럴줄 알았어
한마리 뱀이 허물을 벗는 속도는 어느정도 될까? 광화문 지하보도가 허물을 벗듯 그토록 오랜 기간 공사를 하더니만 이제 완성이긴 한가보다. 대형 냉장고에서 썰어 온 듯한 금속재로 치장한 천정은 꼭 금방이라도 떨어져내려 몸을 두동강이 낼 듯한 작두 같기도 하고, 그것이 떨어지면 곧장 가장 끔찍한 소리가 날것 처럼 바닥은 차가운 대리석재로 마감 되어 있었다, 중간 통로엔 왠지 지하철공사에서만 기획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른바 '시민전시공간 ' 같은 것이 빠짐 없이 마련 되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 통로의 중앙 벽면은 황토- 따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뭐-든 삐딱하게 보자면 한없이 삐딱하게 볼 수 있고, 좋게보자면 또 한없이 좋게 보아줄 수 있는데, 광화문 지하보도에 대해서만큼은 꼭 삐딱하게 보기로 작정했나보다. 뭐랄까- 또 모럴바운더리 같은걸 들먹이면서 우리의 영지에 무슨짓을 해놓은거야! 라고 소리치고 싶은게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반쯤 마비된 오른손 엄지와 검지, 중지로 덥썩 처음 집어들은 음반은 엘리엇 스미스의 유작앨범- 그의 본명이 스티븐 폴 스미스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살짝 미안해 했고- 파이트클럽에 서 잭의 얼굴을 끌어안던 그 덩치의 이름이 스티븐 밥 폴슨이었던가 아니면 로버트 밥 폴슨이었던가를 살짝 궁굼해하며- 마치 오래전부터 작심하고 구매하기로 했던 앨범인양 무심코 핫트랙에서 From A Basement On the Hill 알범을 들고 나왔다.
이상하게 제시의 눈빛을 쫒고 있다보면 몇번이고 살짝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가 셀린느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알고있고, 그것이 그에게는 물론 동시에 내게도 충실히 작용하고 있는 욕구이기에 셀린느가 눈빛으로 혹은 몸짓으로 애타게 거절하는 그 순간들마다 제시가 느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본능에 대한 어떤 자책감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9년동안 능구렁이가 되버린 제시에게는 그 모든것이 자연스럽기만 했을지도 모르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그들이 공감했던 그 어떤 상실감과, 허무, 영원에 대한 불신, 믿음의 부재- 라는 화두가 진부하게 느껴진다면- 내게 있어서 서른 두살이라는 나이는 과연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본다. 처음부터 가지고있던 쓸데없는 의심이긴 하지만- 제시는 아마 비엔나에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콜록- 셀린느의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래 잠시 포즈- 버튼만 눌러 놓았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어.
징그러운 지금.
창문 넘어 절대 볕이 들지 않는 구석인데도 이 시간엔 노란 햇볕이 닿는 곳이 있다. 헤드셋 L 라인으로는 심벌주자가 뒷 편 어딘가 에서 또깍 또깍 칭 칙 칭 칙 보사노바 풍으로 반주를 깔아주고 있고, R 라인으로는 백년 쯤 묵은 콘트라베이스가 디 두 두 둥 둥 눈감고 제 자신을 열심히 퉁겨대고 있고, L도 R도 아닌 내 눈과 양쪽 귀 사이의 어디에선가엔 말끔한 기타-플레이어와, 끈적 끈적 섹소폰 연주자가 끈임 없이 멜로디를 지어내고 있다. 어디선가 들어 본 익숙한 멜로디 인데- 대게 연주곡은 제목을 모른다. 몰라도 무관하기도 하고.
소리가- 만져질 듯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 느낌이라는 것이, 사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충격적이다. 재귀대명사라도 써서 구체적으로 독일적으로 설명해보고도 싶지만, 아직은 무리- 애초에 뭔가 써보려고 메모장을 열어놓은게 잘못이다- 음악조차 만져질듯 분명한데 뭐가 더 필요할지- 아무 생각 없이 아주 조금 무리해서- 그것도 저녁 시간만 할애 해서 어딘가 달려가는 내 모습이, 수년전 내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서 좋다- 숫자상으로 퇴보일수도 있지만- 기껍게 원했던 퇴행 아닌가-
글쓰는 동안 햇볓이 좀더 지상으로 움직인 것을 발견 한다거나, 코가 간지러워 손을 코 끝에 가져올 때 30분전에 손에 쏟았던 뭔가의 향기를 다시 느낀다거나, 볼드한 원두만 물리게 끓여먹은 탓에 탈이 나서 텅텅 빈 뱃속에 공복감을 느낀다거나, 슬슬 눈이 감길수록 슬슬 졸립기 시작하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껌뻑인다거나,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마음에 든다. 이 모든 것들이 분명히 날 배신할거라 협박한다 해도 비난할 생각은 애초에 없다- 이 순간에 나와 같이 있어주면 그게 전부인거지 뭐.
아유- 그만-
타르 6.0mg, 니코틴 0.60mg
왜이리 지겹니?
사는게 말이야- 귀찮다고 말하면 게으르다고 탓할꺼야? 에이 그럼관두고- 내 생각엔 귀찮다 와 재미 없다 라는 말이 뭐 그리 다를 거 없어 보이는데- 음 그럼 '재미없다' 로 하지 뭐 '사는게 왜이리 재미없니?' 라고 말하면 게으르다고 탓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으니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왜그러냐고? 그런가-? 그런지도 모르지- 그럼 어울리는 나이는 언제쯤이야? 그럼 어울리는 그 나이가 되어서 '사는게 왜이리 재미없니?' 라고 하면 그 때엔 또 더 어울리는 나이가 생기는 건 아니고? 아휴 대답 안해도 괜찮아-
적어도 스무살의 봄날은- 남들이 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꽤나 내게 찬란하고 재미난 것 들로 넘쳐 났던 것 같은데 말이지- 너는 도전해 봤는지 모르겠지만 감히 닭살스럽게 아름답다 라는 표현도 서슴치 않았고 말이야- 그 때 내게 새롭고 재미있었던 그 찬란한 것들이 무엇이었냐고? 그게 어떤 사랑- 을 의미한다고 넘겨짚지는 마- 거의 비슷하긴 하지만 내게 의미있었던 것은 사랑했던 그 대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번씩 울상을 짓다가도 웃어버리곤 하던 내안의 감정의 변화 그 자체였으니까 말야-
그래 그런 변화들이 이제는 좀 지겨운 것 같아서 그런가봐- 시네마 천국에 보면... 봤어? 토토가 살고있는 동네에 있는 유일한 그 극장에서는 매일 똑같은 영화를 상영해도 매일같이 찾아오는 동네 주민들이 있잖아... 근데 봤지? 영화 속 주인공의 말투를 줄줄이 꾀차고 있으면서도 늘 그렇게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 사람들의 순박함- 기억나? 그래 뭐 좋은말로 하면 순박함이고 나쁜말로 하면 멍청함 정도가 되겠지- 순박함이든 멍청함이든 간에 요즘엔 그게 좀 부럽기도 해- 이미 상투적인 레파토리가 되어버린 어떤 내안의 감정들에도 한결같이 가슴깊이 감동하거나 행복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야. 설마 그 동네 아저씨가 영화속 같은 장면속에서도 미묘한 어떤 다른 느낌들을 매일같이 발견해 낼 수 있는 그런 기민함을 가진건 아니겠지?
그래 뭐- 재미없어- 라고 불평을 하자면 추천해 줄 수 있는 삶에 재미 요소들은 수십 수백가지 항목들을 나열 해 볼 수 있을꺼야- 그게 일이든, 공부이든, 종교이든, 마약이든- 근데 말야 고백하건데, 내 생각엔 삶의 재미..... 자꾸 재미 재미 해서 어떤 향락적인 것 만 생각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말하는 재미라는 개념엔 깊은 슬픔이나, 고통 따위도 다 포함하고 있는거야- 즐거움은 물론이고 어떤 특정한 감정을 말하는게 아니라 감정의 기복 자체가 재미라는 것이지, 아- 이해하고 있었다면 미안- 응 다시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그 재미는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내게 작용해 온다기 보다는, 내가 내 외부에 있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에 내 존재를 투영해보고 반사되는 그 작용이 더 절대적인 것 같다는 거야....
당연하다고? 그래! 응 그게 당연한데- 그래서 문제라는 것이지, 내 외부에 있는 그 어떤 것이 무엇이든 상관 없기 때문에 더 큰 문제라는 거야.
Haben Sie mich verstanden? 개인적으로는 방금 한 얘기가 꽤 절묘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부분에서 이해하지 못했다면 좀 아쉬울꺼야. 큭.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 없어- 다만 점점 더 무료해지기만 해서- 자꾸만 그 외부를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하는 것 같애. 이번엔 좀 큰 변화를 만들어볼 작정이어서 기대가 되긴 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말야. 가까운 사람들은 그 변화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이유를 듣고싶어 할지도 모르는데. 물론 그 전에 관심없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지만, 진정 그 이유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쉽고 빠르고 적당히 설명해 줄 만한 마땅한 이유가 없어서 걱정이지 뭐니. 마음먹고 설명하자면 위의 절묘한 문장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이해하고 싶으면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보시라- 하며 장황하게 설명해야겠지. 큭 왜 그리 심각한 표정이 되어버린거야? 네 삶이 갑자기 즐겁고 행복해 보이더라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어- 난 이미 너의 행복을 질투할 수도 없는 운명인데다가 아직 세상은 네게 더 유효하니까.
휴우- 담배좀 줄여야겠다?
근데- 이상한건 타르가 내 몸에 축적되어 생명을 단축시키는 시간의 양보다. 어떤 생각들이 분명해 지는 것 때문에 내 생이 단축되고 있다는 느낌이 더 큰것 같지 뭐니- 훗
이유.
8월의 첫 번째 텍스트이기 때문에-
혹은 공복감 때문에-
혹은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혹은 그 날의 대화 덕분에-
혹은 무엇인가 정해졌기 때문에-
휴렛 페커드社의 우주횡단 프로포살.
HP社 에서 토요일 아침 묵직한 상자하나를 보내왔다.
우리가 비밀리에 진행 중인 이른바 어크로스더 유니버스 현실화 프로젝트에 hp社에서 마저도 관심을 보인 것이다. 도데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벌써 이렇게 세계적으로 알려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이트를 연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hp社로 부터 이렇게 까지 발빠른 프로포즈를 받게 되자 조금 당황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우주를 건너는 그들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조심스레 그 상자안에 담아놓고 있었다. 우주선을 제작하는 방법을 디테일한 그래픽으로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것은 물론 그 우주선의 목업 작업물 인 듯 보이는 축소 모형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상자를 열자마자 날 감동 시킨 것은 hp社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얼마나 중요! 하게 생각하는지를 잘 알수 있도록 누차 강조한 한장의 빨간 페이퍼였다. <사진 2 참조>
처음에는 그들의 구상이 너무나 획기적인 것이어서, 도데체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우주를 건널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애를 먹었지만. 그런 나를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그들이 그려놓은 갖가지 다이어그램을 통해 나는 단번에 그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내가 처음 감동했던 것은 CE 라는 특수엔진 제조회사에서 개발한 독창적인 레이저 분사 젯트엔진이었고, 에너지가 어떤 형태의 구조물을 통해 분리배출 되는지를 설명한 부분이었다. <사진 3 참조>
하지만 그것은 그저 기술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았고 내가 가장 높이 사고싶었던 부분은 어떤 일반적인 논리를 벗어난 그들의 감성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그들, hp社에서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우주횡단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략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12시가 두번 지난, (즉 24시 정각에) 검은 와인잔을 들고, (즉 투명하지 않는 금속성분의 잔) 비가 오는날 우산 만 비를 맞도록 한 채 서 있으면 (즉 비를 맞고 서있어야 한다는 의미) 충분히 중력을 이기고 대기를 뚫고 우주로 날아갈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대기권을 벗어났을 경우에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비닐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특수 봉투를 착용했을때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지, 그것에 필요한 특수 로프들까지 세밀하게 마련 해 놓고 있었다. 아마 그 특수 봉투에 대한 친절한 설명 부분에서 나는 거의 울먹일정도로 감동한 상태 였던것 같다.<사진 3 참조>
다시한번 이자리를 빌어 hp社의 이런 열정적인 모습에 경의를 표하며 이곳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프로젝트를 이렇게 자발적으로 정성껏 성원해주는 세계 각지의 후원자들을 위해서라도 꼭 우주횡단 프로젝트의 완성을 약속드리고 싶다.
-_-
하암
가끔 내가 아직 스물 다섯 이라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년 뒤에 서른살이 되어도 마흔살이 되기 위해 10년이 더 남았고 마흔이 되어서도 오십이 되려면 또 십년. 적어도 평균적으로 보자면 오십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 인데- 휴-
그렇다고 또 염세주의자 는 못됀다. 다만 가끔 가지런한 生의 한가운데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배를 퉁퉁 튕기며 '아유 이정도면 충분하잖아-' 라는 식으로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이지. 조이스틱은 누가 쥐고 있어도 이젠 상관 없다는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