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라는 곳이 애초에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이십여년 전부터 ‘기획'하여 ‘조성한’ 마을인지라, 이어져 온 역사와 전통이랄 것이 없지만, 인위적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테마-파크 형식의 가짜 이미지를 내세운 마을로서는, 내 기억으로는 거의 대한민국 최초가 아니었던가-싶다. 아마도 헤이리 이후 그 짭짤함을 맛 본 행정가들이 전국 방방곡곡 에 듣도보도 못한 관광테마 단지들을 조성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통일전망대나 임진각 이외에 딱히 볼거리가 없던 파주에 헤이리가 가져다 준 부가가치는 물론 이곳 주민들의 신소득원으로서 의미있는 일이었을테지만, 옥상에 올라가 이 일대를 둘러보면, 나즈막한 산둥성이마다 뜬금없고 조악하게 자리잡은 인공단지들이 주는 부조화 탓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건축가들의 미니멀리즘 한풀이 장소이기라도 한 듯 정숙한 헤이리 건물들에 들어선 경망스러운 가게들부터가 부조화.
헤이리 마을 동쪽으로는 야심차게 조성되었던 영어마을의 근본없는 유럽풍의 건축물이 볼성사납게 늘어서있고, 남쪽을 볼라치면 신촌에나 있을법한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장식된 모텔촌이, 그 너머에는 조성중인 고려역사박물관이 보인다. 성동IC 초입에는 그 부조화의 정점으로서 프랑스 남부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파주프로방스 맛고을(?)이 자리잡고 있다. 그나마 이곳의 지역적 특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곳은 아마도 파주 산업단지 옆으로 자리잡은 실향민들의 묘소가 있는 경모공원 정도일 것이다.
주말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경모공원에서 가짜의 조화를 사들고 가짜의 북한 행정구역이 표시된 경모공원 올라가 망자를 기리고, 프랑스풍(?)의 맛고을에 들러 순두부나 돈까스를 먹고, 식후경으로 영어마을에 들러 영어만 사용해야하는 유럽풍(?)의 가짜 도시를 거닐거나, 헤이리에 들러 모던한 식당에서 오뎅국을 먹고 철지난 최신의 예술작품(?)까지를 감상하고, 또 온갖 스타일로 장식된 모텔룸에 들어가 하루종일 체험했던 복제와 가상, 가짜의 하루를 되새겨볼 수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파주-시뮬라크르-테마파크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어쩌면,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임진각에 조성된 놀이동산이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치열하게 싸우던 전선, 최접경지역에 조성된 평화누리공원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애초에 '아이러니'가 파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날씨가 너무 좋은 나머지, 이곳에서 유일하게 근본있는, 역사와 전통을 소유한 자연풍광에 대비되어 도드라진 인위적인 도시풍경이 밉살스럽게 보였던가보다. 그래도 아직은 파주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