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업

“이 작업은 불쾌해. 이건 불쾌의 쾌야. 나는 네가 이 불쾌를 어떻게 아름다움으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지 궁금해.”

“맞아요. 제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해요. 니 작업 진짜 기분 나쁘고 우울하니 그만하라고.”

“그런 얘기를 듣고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뭐야? 그래도 괜찮아?”

“네, 저는 제 작업이 좋다고 믿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해서 눌러주는 ‘좋아요’ 숫자에 저도 모르게 연연하게 되더라고요. 이를테면, 제 작업물 사진에 붙는 좋아요 숫자보다, 음식 사진에 붙는 좋아요 숫자가 더 높을 때?”

“나는 그게 궁금했어. 네가 네 작품이 정말 좋아서 좋다고 말하는지, 아니면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어서 좋은 것인지. 남들이 좋아하지 않아도 너는 그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거야?”

“네, 저는 제 작품이 좋아요. 이건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요. 좋다고 믿는 것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네 작품에 대해 무어라 얘기하든 상관없잖아. 그냥 좋다고 말해. 네 작업이 좋다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형에게 저는 뭘까요. 같이 작업하는 동료일까요? 아니면 후배?”

“나는 동료라고 생각해. 하지만 네가 마치 확신이 없는 듯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에 관해 뭔가 조언해주고 싶은 거잖아. 넌 그냥 그런 따뜻한 조언을 듣고싶을 뿐인 건 아닐까?”

“형은…… 진리가 있다고 믿으세요?”

“글쎄… 없다고 생각해. 동양적인 진리로서 모든 것이 다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라는 말이 진리라고는 생각해, 하긴 서양에서도 그 뭐냐, 모든 것은 변한다고 했던 그 사람도 있구나.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건… 뭐랄까 반칙 같아. 사실 세상의 모든 논의는 작가 믿는 진리-라는 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엎치락뒤치락 발전해 왔으니까.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건 너무 속 편한 얘기같아.”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래서 너는 네가 아름답다고 믿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네가 정말 진리라고 믿는 게 있다면, 그 생각을 죽을 때까지 밀어 붙여야 된다고. 애초에 중간에 포기해버리고 말 생각이면서도, 그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서도 마치 고결한 듯, 자기 지금 생각이 진리인 양 말하는 건 비겁한 것 아닐까. 나 역시 고결한 듯 말할 수 있어. 하지만 속된 부분 역시 인정해. 네가 고결한 얘기를 하면 나는 속된 사람이 되어버리는 셈이잖아…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괜히 에둘러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네 어쩌네 말 할 필요 없지 않을까. 자기의 투사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싶은 것 뿐이지. 애초에 옳다고 믿는 게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뭐가 중요해.”

“맞아요. 이건 확실해요. 저는 제 작업이 좋아요.”

칸트

그것은 지금껏 내가 살아오며 느꼈던 것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그 색다른 즐거움에 이끌려 무작정 걷다가 그만,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내가 늘 산책하던 길을 찾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내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 있는 자들은 완전히 태생부터 다른 종인 것처럼 친밀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느낀 것은 내가 그동안 믿고 있던 감각마저 의심하게 할 만큼 강력한 두려움이었다.

모퉁이마다 길게 자란 풀더미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아도 내가 살던 곳과는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맴돌았다. 가끔 집 앞에 물건을 내놓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의심 어린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길 찾기를 포기하고 사람들 눈을 피해서 하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일어나 산책을 한다.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에 대해서 잊어버렸을 만큼 나는 오랜 시간 그 일을 반복해왔다. 목적 없는 그 반복적인 행위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오늘 아침, 문을 열고 나선 그 순간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침에 문턱을 넘어설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멀리에 어렴풋이 보이는 커다랗고 빨간 무언가이다. 그것은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울 만큼 밝아서 늘 눈을 찡그리고 마는데, 나는 그것이 전해주는 따뜻한 온기를 좋아했다. 길에 나서면 숨을 들이쉴 때마다 풍겨오는 온갖 향기를 맡느라 나는 정신을 못 차린다. 나에겐 보는 것 못지않게 잘 발달한 후각이 있어서, 어쩌면 눈을 감고 익숙한 냄새만 쫓아다녀도 산책을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눈을 감는 편이 나에겐 더 편안하지만, 요즘 들어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거대하고 빠른 물체들이 많아져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땅속 깊은 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지독한 기름 냄새를 풍기는 덩치 큰 것만 아니면 내 산책길이 한결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인적이 드문 풀숲 가를 가로질러 산책하기를 더 좋아한다. 나무들이 흙 속에서 물을 빨아들일 때 나는 냄새며 가지에서 잎을 터질 때 나는 냄새 같은 것을 맡으며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 때로는 산속 깊숙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내 코를 자극하는 냄새들로 가득해, 아마도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산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편으로 더 많은 사람이 사는 길이 이어져 있고, 그곳에는 늘 빨갛고 뾰족한 것이 서 있다. 나는 그 빨갛고 뾰족한 것을 좋아한다. 나는 오늘도 그 앞에서 서성이며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소변을 보았다. 그 행위는 내가 항상 같은 집에서 같은 시각에 밥을 먹고, 꼭 같은 이불 위에서 잠들었다가 일어나 아침 산책길에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모든 반복적인 일과가 내게 꼭 같은 만큼의 기쁨을 준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모든 일과가 모두 틀어져 버린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이 세워 둔 그 뾰족한 모양의 물체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웬일인지 나는 그 원뿔 모양의 물건의 쓰임이 궁금해졌던 것이다. 사람들 사는 곳으로 뻗은 길에, 그와 같이 생긴 빨간 것이 계속 서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그때부터 그 뾰족한 것들을 눈으로 하나 둘 세며 지나가고 그것의 맛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골목에 다다르자 어떤 사람이 그 원뿔 모양의 물건을 들고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동안 관찰하고 있는데, 고깔이 원래 있던 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다시 세워놓지 않겠는가. 그리고 고깔이 없어진 자리에는 내가 싫어하는 그 위협적인 덩치가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저 고깔이 있던 자리에는 내가 싫어하는 그 큰 것이 기어들어 오는 것이구나. 나는 순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고깔들 주변을 살피며 그와 같은 일들이 또 한 번 벌어지는지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러자 여지없이 고깔이 없어진 자리로 그 묵직한 것들이 조용히 들어와서는 멈춰 서는 것이 아닌가! 멈춰 선 채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잠든 게 틀림없었다. 고깔이 있던 자리는 저 두려운 존재들이 잠자는 곳이라는 두 번째 깨달음. 나는 기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구 달렸다. 이제 저 커다란 물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된 것이다. 지금까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느낄 수 있었던 기쁨과는 또 다른 행복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배가 고파 아무 것이든 냄새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몇 가게 주인은 먹다 남은 음식을 내게 던져주기도 했지만, 대부분 몽둥이를 들고 휘둘러대는 통에 먹던 것을 재빨리 물고 도망쳐야 했다. 가끔가다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의 향기를 맛본 듯하여, 사람들 사이로 미친 듯이 헤집고 달려보기도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걸을 기력도 없어 멈춰선 곳은 웬 언덕 끝이었다. 언덕 너머에는 무언가가 산 위에 걸려 있었다. 작은 딱정벌레의 등에 난 점처럼, 동그랗고 빨간 것이 멈춰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점차 번지고 있었다. 차가워졌던 몸이 다시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매일 아침 산책을 나설 때 문턱 너머 보았던 그 밝고 따뜻한 무엇과 닮아 있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 동그랗고 빨간 것은 아침에 우리 집 문앞의 산에서 솟아나, 저 산 뒤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이 동그랗고 빨간 것 때문에 하늘이 밝아지고 또 어두워지는 것이며, 아침이면 따뜻해졌던 거리가 저녁에는 차가워진다는 사실을!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 온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면 집을 찾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살아온 모든 생의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던 이 거대한 규칙들을 알아버리게 된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내 하루를 밝혀주고, 내게 생명에 온기를 전해주는 이 거대한 존재 앞에서 나는 두려움이 아닌 거대한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산 너머 사라지는 동그랗고 붉은 존재의 냄새 맡고 싶어 코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것으로부터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칸트! 칸트!”

사실 목소리가 들려오기 이전부터 나는 주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디 갔었니! 온종일 찾았잖아!”

주인은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주인의 옷에서 나는 익숙한 냄새에, 내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혀로 그의 귀를 핥으며, 빨갛고 동그란 그것이 사라진 하늘 위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저 별빛이 네 눈에 이르기까지

“저기 저 별 좀 봐.”

“어디?”

“저기 저 북쪽 하늘. 큰곰자리 꼬리 부근에 저 밝은 별 말이야. 목동자리에 속한 저 별을 대각성이라고 해. 청룡의 거대한 뿔.”

“오……”

“신기하지 않니? 저 별에서 수십 광년 전에 출발한 빛이 지금 너의 눈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이 필요했을까. 내가 별을 가리키지 않았다면 너는 저 별을 평생 보지 못했을지도 몰라. 혹은 봄철의 심술궂은 날씨 탓에, 구름에 가려졌을 저 별을 내가 너에게 보여줄 생각도 못 했다면? 우주를 가로질러 너의 눈에 들기만을 고대했던 저 별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수십 광년 만에 한 번 찾아올 기회를 놓친 셈이지! 그래, 네가 지금 가리키고 있는 붉게 빛나고 있는 그 별 맞아. 아크투루스*라고도 해.”

“아아……”

“그렇게 심드렁하게 볼 일이 아니야. 중대한 사건이라고. 이건 마치 네가 어젯밤 내뱉은 한숨이 대기 중으로 날아올라 밤사이 서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휩쓸려 동쪽의 높은 산맥을 넘고, 다시 바다 내음 가득한 동풍을 타고 돌아와 아침에 일어난 너의 첫 숨에 다시 온전히 들이켜 질 가능성보다 더 적을지도 몰라.”

“오오……”

“아니면 네가 작년에 옥상에 올라갔다가 난간에서 묻은 먼지를 무심코 털어냈는데, 그 먼지 한 톨이 오래된 화분 위에 앉아 있다가 한 해 동안 궂은 날씨를 다 견뎌내고, 이듬해 너희 집 화분에 우연히 싹을 틔운 참나무 한줄기를 바라보던 네가 큰마음을 먹고 분갈이를 해주려 옥상 한 귀퉁이 화분을 집어 들었을때 하필이면 그 먼지가 앉아있던! 너의 소매 위로 뛰어올라 다시금 들러붙는 사건보다 더 대단한 일인지도 몰라!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다니. 그럼 우리가 만날 수 있기까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봐. 나는 네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다른 도시에서 태어났지.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성미를 가지고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하며 살아온 내가, 무슨 마음에서인지 정착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그해, 하필이면 그 도시에 네가 방문한 날, 하필이면 너는 내 작업실을 방문하고 싶어 했고, 하필이면 낯선 이의 방문을 꺼리지 않았던 그 날,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우연 말이야. 거기에 내가 열 살이 다 되도록 너는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을테니, 네가 태어나기까지 너희 부모님이 서로 만나게 되기까지의 우연에다가 너희 부모님의 부모님, 우리 부모님의 부모님이 만나게 된 인연까지 합한다면……”

“합한다면?”

“그래, 저 별빛이 네 눈에 이르기까지의 우연은…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그렇지!”

김대현 작가님께

안녕하십니까, 김대현 작가님.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답신이 늦어지게 된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아보는 일이 드물기도 하거니와, 일본, 한국, 프랑스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는 터라, 한국의 작업실에 도착해 있는 편지들을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파리 날씨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매우 변덕스러웠답니다. 삼월 초에는 눈이 내리기도 했지요. 파리를 떠나오던 날이 되어서야 겉옷을 벗고 다녀도 될 만큼 따뜻한 날씨가 되었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신록의 빛깔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더군요. 나지막한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프랑스의 풍경도 좋아합니다만, 저는 역시 한국의 산을 좋아합니다. 너무 낮거나 밋밋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인간을 한없이 위축되게 만드는 장대한 느낌도 아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공항에서 작업실로 가는 길에 보았던 산들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포근하게 우리를 안아주는 어머니 같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집을 떠받치고 서 있는 든든한 우리 아버지의 모습 같았습니다. 김대현 작가님도 아마 그렇게 든든하고 포근한 자연을 늘 곁에 두고 생활하고 계시리라, 보내주신 편지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산책길에 저의 작품을 발견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돌 아래 유리판이 있었다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지각과 현상 B 작품에 사용했던 돌을 닮았다 하시니, 실제로 보고 싶더군요. 산에서 주워온 돌로 전시관을 꾸며 판매하시겠다는 말씀은, 안 그래도 최근 몇 년 간, 위작 논란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 늙은 작가를 놀리려는 짓궂은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작가님이 발견하셨다는 그 돌이 제 작품이 아닌 것은 백 퍼센트 확실해 보이는군요. 돌 아래에 깨진 유리가 깔려있다는 점이 신기합니다만, 아마도 그것 역시 우연의 조화이고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일 것입니다. 사실 저의 관계항 연작 역시 자연의 산물일 뿐이지요. 저는 그것들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고 서로 만나게 하는 우연을 촉발하는 매개일 뿐입니다…

실제로 돌을 팔아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시는 행위라면, 못된 장난은 그만두시는 편이 좋겠다고 조언해드리고 싶습니다만, 돌을 집까지 들고 올 정도의 정성이라면, 작가님께서도 장난삼아 하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시에 쓸 돌을 찾기 위해 산을 헤매고 다닐 때 느꼈던 것들을 조금은 이해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이 말을 하더라’는 말씀도, 그만큼 망아忘我의 상태에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작가님께서 돌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또 물성이 서로 다른 사물들을 관계맺게 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잊고, 자연이 뿜어내는 생동하는 氣의 중재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하셨다면, 그 작업을 계속 진행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저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돌과 철판이 인공물 대 자연물이라는 차이를 갖는 듯 보이지만 함께 대면시켜 놓고 보면, 애초에 서로 다를 바 없는 자연의 산물인 것처럼, 저 역시 김대현 작가님과 다를 바 없는 자연의 산물이지요. 그저 우리를 다른 사회적 조건 속에서 살고 있기에 다르게 보이는 것뿐이지요. 저의 작업에 대해 공부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고정성과 가변성, 물질성과 비물질성, 작용과 반작용, 등 같음과 다름이 저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제가 해 왔던 것과 같은 작업을 하시겠다면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신듯합니다만… 과연 그 안에서 또 어떤 차이가 생겨날지,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실지가 더 궁금하군요.

한국에 와서도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이 있어, 한시라도 빨리 일본의 작업실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여유가 된다면 시끄러운 일들로부터 벗어나 김대현 작가님이 모아 놓았다는 돌을 구경하러 가보고 싶기도 하군요. 작가님께서도 일본 카마쿠라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같이 차나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2016년 4월 22일

이우판 씀

친애하는 이우판 작가님께

친애하는 이우판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파주에 사는 김대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요. 언제 한 번 선생님께 제 작품을 소개해 드릴 기회가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언론 인터뷰 사진을 통해서 밖에 뵐 수 없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한 모습이셔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계신 곳의 날씨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변덕스러운 봄 날씨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제가 대학교 삼 학년 학생이었을 때입니다. 한국 미술사 수업 시간에 여러 한국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그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선생님을 택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선생님의 인터뷰와 작품들을 찾아보고 출간하신 책을 읽어보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대단한 작가가 있구나-하며 선생님의 작품과 선생님의 미학에 흠뻑 빠졌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작업을 계속해나가며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싶어 했던 작가 지망생으로서, 세계적인 갤러리, 작가들과 교류하며 자기 미술 세계를 펼쳐나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큰 본보기가 되어주셨습니다. 때마침 당시 사간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선생님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선생님을 한 번 만나 뵐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전시장을 자주 드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 책에서 읽기로는, 철판과 돌의 조합으로 작업하시는 <관계항> 연작을 작업하실 때, 그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돌’을 직접 찾아 작업에 사용하신다고 들었는데, 그 전시의 작품 설치는 직접 지휘하지 않으셨다고 들어서 조금 실망했던 기억도 납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선생님의 미술관 건립 문제를 두고 시끄러운 일이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제가 존경했던 선생님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된 미술관이 모국에 지어진다는 것은, 살아있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모두의 축복 속에서 진행되어야 할 일인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기에 놀랐습니다. 알고보니 선생님은 미술관 건립을 기대하거나 요청한 적도 없으셨더군요. 선생님의 유명세를 빌어 득을 보려는 지자체와 선생님의 비싼 작품값을 시기하는 작가들이 정체성 운운하며 빚어진 일이라 여겼습니다. 거의 외국 작가라 해도 무방한 백남준 작가에 대해서는 ‘한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라 추켜 세우며 미술관 건립에 열을 올리고 또 반대의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에 비교해 보자면 우리나라 ‘미술계’ 라는 곳이 얼마나 꽉 막혀있는지, 작가의 작품보다 ‘유명세’에 좌우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가로서 어떤 국가적 정체성에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선생님께서는 한국적인 것, 동양적인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깊이 있게 연구하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동양철학과 동양의 미를 서구 미술계에 선생님처럼 직접적이고도 주도적으로 소개한 작가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몇 년 전 한 언론과 하신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간, 마음고생이 심하셨겠구나 싶었습니다. 잘 해결되어 선생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이 축복 속에 개관하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편지를 쓰다 보니 얘기가 길어진 듯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자 한 이유는, 바로 ‘돌’때문입니다. 얼마 전 산책길에 무심코 마주친 ‘돌’이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돌은 꼭, 선생님의 구겐하임 전시를 위해 작업하셨던 <관계항-지각과 현상 B> 속에 나오는 돌과 꼭 닮아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선생님이 유리판 위에 올려놓으셨던 그 돌 말입니다. 돌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청년, 나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돌이라네.”라고 말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돌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아무튼 산책길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그 돌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돌의 생김새를 살피는데 바닥에서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군요. 돌 주변의 흙먼지를 걷어보니 그 아래에는 깨진 유리 한 장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돌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유리가 바닥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 영 불편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의도치 않게 자신의 물성과는 정 반대에 있는 또 다른 존재를 파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느낌은 선생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것이기에, 저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우판 선생님의 작품이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래도 지나친 우연이 아닐까 하여, 주변을 더 살펴보았습니다만, 유리나 철판과의 관계 항에 놓여있는 돌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보존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인적이 드문 시각을 틈타 그 무거운 바위를 들고 우리집 옥상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바닥에 깔렸던 유리조각에는 먼저 테이핑을 하여, 깨져있는 조각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였으며 넓고 얇은 석판을 유리 아래로 밀어 넣어 깨진 상태 그대로 이동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옥상으로 올려놓고 원래 돌이 있던 위치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만큼이나 엄숙하고 진지하게 처리되었습니다. 아마 선생님께서도 만족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선생님께서 잃어버린 작품들이 더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파주 인근의 산을 몇 년 째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선생님의 더 많은 <관계항> 연작을 찾아내었습니다! 제가 찾아낸 선생님의 새로운 작품들을 세상에 공개하기 전에, 선생님께 먼저 연락을 드리는 것이 도리라 여겨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제가 주워온 돌과 나무, 철판을 전시하고 선생님의 이름을 빌어 미술관을 짓고자 합니다. 미술관 이름은 <파주 이우판의 말하는 돌 미술관>입니다. 작품의 판매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제가 주워온 돌이니, 판매 수익은 모두 저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제가 산과 들을 누비며, 선생님의 작품을 발견하며 느꼈던 흥분과 환희를 선생님은 상상도 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럼, 선생님의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파주에서, 김대현 드림

나타나엘이여!

너에게 기약 없는 기다림에 관해 얘기해 주려 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기다리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기다림에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 기다린 것에 대해 보상을 바란다면, 나중에 비로소 그 기다리는 대상이 너에게 찾아왔을 때 그 모든 환희의 순간을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야.

네가 기다리는 것이 행복이더냐? 행복이 막상 너에게 찾아왔을 때를 상상해 보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는 생각에 너는 이제 막 도착한 그 과실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야. 그렇지만 너는 그것을 꽉 움켜쥐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쉽게 부서져 버릴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나타나엘이여! 기다림을 고행이라 여기지 말거라. 막상 그것이 네 눈앞에 나타났을 때, 가슴 속에서 울컥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도 그러지 말거라. 그저 행복 속에서 그것과 함께 있음을 즐겨야 해. 네가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다림의 대상도 충분히 알고 있단다. 네가 기다린 시간만큼 너에게 머물러 줄 것이니 떠날까 봐 조바심내지 않기를.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 또 떠날 채비를 하더라도 슬퍼하지 말아라. 너 혼자 그 모든 것을 차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네가 기다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더냐? 불행을 기다리는 일도 마찬가지. 다가올 불행 앞에서 조바심 내지 말거라. 언제든 다가올 일이라면, 그것이 닥치기 전까지 네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며 견디거라. 막상 그 불운이 너와 마주치더라도 너의 무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마치 애초에 그냥 스쳐 가려 했던 것처럼 행동하게 놓아두거라. 의연하게 불행을 맞이해야한다. 불행은 너무나 외로워서 자신을 두 팔 벌려 안아줄 누군가를 늘 찾아 다닌단다. 그 불행도 역시 너만의 것이 아니다. 너만이 불행을 끌어안고 위로해 줄 유일한 사람은 아닌 것이야. 그러니 불행이 뜨거운 눈물 자국을 네 가슴팍에 남기며 스르륵 빠져나가려 할 때 그 떠나가는 모습을 의연하게 지켜보렴. 불행이 떠나가는 일 역시 아쉬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하는 얘기란다.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과실은, 행복이나 불행이 아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이겨냈다는 성취감과 보람이란다. 한 번 그렇게 의연해지면, 다른 그 무엇도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타나엘이여! 네가 기다리는 것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아무런 기약도 없는 듯이 기다리되, 그것의 부재를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말아라. 행복이나 불행은 기다리는 자에게 언제고 찾아온다. 그리고 언제고 떠난다. 네가 만약 그런 것을 기다린다면, 내가 일러준 대로 기다리거라.

만남의 광장

우리는 오늘 이탈리아 광장에서 만난다. 사실 우리는 이탈리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그저 유럽 어디선가 보았던 회랑형 건물이 서 있는 이곳을 이탈리아 광장이라고 부르기로 했을 뿐이다. 광장 너머에는 커다란 탑이 서 있다. 역시 이탈리아 어딘가에 있는 기울어진 탑을 닮았다. ‘이탈리아적 的 무엇’에 대한 빈약한 상상력이 빚어낸 듯한 이 조악한 풍경을 나는 좋아한다.

광장 한쪽에 서 있는 벽돌과 회반죽으로 만든 하얀 건물은 오래된 학교의 부속 건물처럼 보였다. 반대편에도 쌍둥이처럼 닮은 건물이 서 있었는데, 이탈리아산 고급 대리석 석재들을 보관해 놓는 창고 같았다. 물론 실제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의 일 층에는 높은 회랑형 복도가 나 있었고 네 개의 기둥이 아치 형태로 천정을 떠받들고 있었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어느 신의 와상 臥像 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 동상의 그림자 끝이 회랑형 건물의 다섯 번째 기둥을 가리키는 시각에 만나기로 하였다. 그 시각은 두 시일 때도 있었고 다섯 시일 때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그날 이 광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거대한 동상의 그림자의 길이를 늘 확인해 보아야 했다. 오늘은 강렬한 태양 빛 때문에 그림자가 더욱 짙어 보였다.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의 그림자가 기숙사 건물의 여섯 번 째 회랑 안으로 진입할 때쯤 나는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 바닥은 그냥 누런 황토로 다져져 있을 뿐이어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먼지가 심하게 일었다. 파란 하늘이 먼지와 뒤섞여 뿌연 연둣빛을 띠었다.

그동안의 우리는 약속을 해 놓고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로 이탈리아 광장엘 가곤 했다. 언제나 광장 어디쯤에서 만나자고 할 수 있었을 뿐, 특정한 장소를 정확히 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모든 풍경은 우리의 이성이 그 특유의 정합성을 발휘하기 이전, 우리의 무의식 때문에 늘 조금씩 틀어졌다. ‘이탈리아 광장’이라는 이 형이상학적인 공간은,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좌표일 뿐이었다. 엉뚱한 환상을 빚어내는 무의식의 방해 때문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초래한 혼돈이 더 많았다. 이를테면 이탈리아풍의 이 층 건물을 광장 한쪽에 세워두고 그 건물 왼쪽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나서 보니, 각자 다른 방향에 건물을 세워놓아 두 채가 되어버렸다거나, 광장 가운데에 동상 앞에서 보자고 해놓고 서로 완전히 다른 모양의 동상을 세워놓는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쌍둥이 건물을 마주 세워놓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자, 사방을 분간해 줄 또 다른 기준점이 필요했기에 우리는 거대한 탑을 광장 바깥에 짓기로 하였으나, 그 탑의 모양도 서로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물을 설정하기로 하였다. 자동차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으니, 수증기를 뿜어내며 달려가는 증기기관차가 제격이라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증기 기관차를 기준으로 삼아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우리는 잠들기 전에 확신에 차서 이런 편지를 주고받았다.

“내일 이탈리아 광장에서 만납시다. 광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어떤 동상의 그림자가 증기 기관차가 달려가는 방향에 서 있는 회랑형 건물의 다섯 번째, 혹은 여덟 번째 기둥에 맞닿았을 때, 광장에서 거대한 탑에 가까운 쪽에 서 계십시오. 꿈속에서 뵙겠습니다.”

나와 당신의 뿌리

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를 서어나무 뿌리에 낳으셨습니다. 날카로운 턱으로 육십 센티나 되는 구멍을 뚫어, 그 속에 우리 서른 형제를 낳고는 돌아가셨습니다. 다른 많은 형제들이 저 자신을 감싸고 있던 껍질을 먹고 기운을 차린 다음 뿌리 깊숙이 파고들며 커다란 사슴벌레가 될 준비를 마쳤을 무렵, 저는 태어난 곳에서 늑장을 부리다가 딱따구리 부리에 쪼여 죽고 말았습니다. 내 몸의 일부는 딱따구리의 위장 속에서 녹아버렸고, 나머지 조각들은 구멍 속으로 날아든 온갖 균에 의해 썩어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처럼 작은, 성충도 되지 못한 애벌레 따위가, 그것도 죽은 뒤에 이런 생각을 글로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애벌레에게도 생각이 있고 영혼이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인간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가 우주의 크기만 한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티끌같은 하루살이조차 우주의 전 영역을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저와 같은 사슴벌레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만큼의 상상력과 무한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기 이전에는 저 역시 생명에 대해 이 정도 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딱따구리에 의해 희생되고 난 뒤, 그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생전의 삶이란, 죽음 이후의 경험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예전의 저는, 자신의 사고 능력을 자기 고유의 무엇인 양 여기고 다른 생물들에 비해 월등한 존재라 여기는 인간들이 참 오만하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식물에 대해서 갖고 있던 생각도, 실은 그와 비슷했습니다. 식물은 우리가 거주하고 이용할 수 있는 터전이자 양분으로 인식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 얼마나 제가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깨닫고는 무척이나 부끄러웠습니다. 저 사슴벌레 역시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지요. 저는 서어나무 뿌리에서 죽어, 이제 서어나무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나무의 정신은, 각각의 나무를 구분 지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경계가 모호한 정신의 총체입니다. 우리, 영혼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습니다. 땅을 매개로 자유롭게 드나들지요. 땅 위에 솟아 나온 나무들을 보면, 땅에 못 박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불쌍한 생명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체는 나무가 아니라 땅에 있습니다. 당신의 머리 위에 난 머리카락처럼 나무들은 땅을 신체로 삼는 영혼이 두른 살갗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립된 개체인 양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의식과 생명에 결합하여 있지요.

저는 서어나무 뿌리에서 죽고 뿌리에서 다시 태어나 뿌리로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땅에 스며 있는 영혼 전체를 함께 느끼고, 그들의 운영에 저 자신을 맡깁니다. 죽음 이전의 삶처럼 ‘자기보존’을 위해서만 살지 않고, 삶의 터전을 위해 살아갑니다. 합리를 따져보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동에는 일체의 숙고 과정이 없기에 느끼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 시간적 차이가 없습니다. 땅에서 물을 흡수해 담고 있다가 증산을 위해 가지 끝으로 올려보내는 일련의 행동에는 아무런 고민이나 수고가 필요 없습니다.

당신들 역시 처음엔 땅에서 출발했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혜를 몸속에 지니고는 있지만, 거듭 태어나며 땅에서 점차 멀어졌습니다. 땅의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당신들은 너무 많이 숙고합니다. 아마 이곳으로 돌아오면 알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새로운 무엇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원래 있던 것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하여간 저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나무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땅의 신체입니다. 바로 당신이 돌아가야 할 곳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땅에 뿌리내리게 될 것입니다.

벌레

내가 처음 이 벌레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여 년 전입니다. 날씨가 화창했던 어느 날, 나의 부모님과 함께 물놀이를 갔던 곳에서 처음 이 벌레들을 만났습니다. 어린 마음에 이 조그마한 생명체들이 무리지어, 또는 홀로 돌아다니며 작은 집을 짓고 사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지요. 그렇게 짓궂게 벌레들과 장난치던 수준에서 전문적으로 이 벌레들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로 접어든지도 어언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물이 흐르는 곳이라면 어디에서건 이 곤충들을 관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벌레에 대한 저의 연구 결과를 이 자리를 빌어 조금이나마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벌레는 주로 강가에 서식하며 군을 이루어 살아갑니다. 어떤 방식으로 서로 대화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서로 협동하여 주변의 자원을 이용해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적응력이 대단히 뛰어나서 열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몸은 좌우대칭으로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고 껍질은 엘라스틴1) 성분으로 구성되어있어 굉장히 부드럽습니다. 가슴과 위쪽과 배 하단에 한 쌍 씩, 총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요, 앞다리는 주로 도구를 다루거나 먹이를 채집하기 위해 사용하고 뒷다리는 주로 이동하는데에 사용합니다. 머리 위쪽에는 섬모가 자라나 있고 전면에 안점과 후두 감각기관, 그리고 저작기2) 가 있습니다. 가슴 안쪽에는 호흡기와 소화 기관이 위치해 있고 배설물은 꽁무니 쪽 외부로 난 배설공에서 배출됩니다. 암수 생식기는 뒷다리 사이 배설공 위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벌레에 대해 알려진 상식은 이 정도입니다.

홀로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는 연구에는 한계가 있어, 저는 얼마 전부터는 이 벌레에 대해 관심이 있는 다른 벌레학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많은 연구자들은 주로 이 생명체의 놀라운 적응 능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의 연구는 이 벌레들이 이용하는 자원을 인위적으로 고갈시켜 본다거나, 물의 양, 기온 등의 생태 조건들을 변화 시켜가며 그에 대한 대응 방법을 관찰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저는 좀 더 미시적인 연구 방법을 선호하는 편이라, 무리 보다는 각 개체들의 습성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한 마리 한 마리를 지정해놓고 관찰하는 식의 표적 연구를 진행하고있지요. 이 벌레의 일생은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도 짧아서 얼핏 보면 그들의 일생이라는 것이, 오직 번식에만 목적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의 표적연구를 통해 관찰해보면 그들의 삶에도 굉장히 복잡다단한 굴곡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이 벌레들이 어떻게 짝짓기를 하고 번식하는 지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번식 그 자체가 굉장한 미스테리였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아주 작은 공간 속에서도 촬영이 가능한 초미세 광학장비들의 발달하면서 이제 우리는 이 벌레들이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어둠 속에서, 그것도 아주 작은 그들만의 구멍 속에서만 짝짓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짝짓기를 끝낸답니다! 이 벌레들은 작은 구멍 안에 이것 저것 외부에서 주워 온 것들을 쌓아놓는 것을 좋아하는데, 짝짓기나 무언가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주로 수집해 온 물건들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있곤 한답니다. 어떤 연구자는 이 벌레들이 밖에서 주워온 것들을 감상하고 심지어 이들만의 종교가 있을거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재고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일 뿐입니다. 이 벌레들의 사적인 생활에 대해서는 좀 더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리라 믿습니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구멍 속 생활과 함께 또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야외 활동에서 보이는 이상 행동들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는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이 벌레들이 서로 마주쳤을 때 아주 낮은 주파수의 소리가 난다는 어떤 연구가의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이들에게 고도의 언어 체계가 있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제 생각엔, 신빙성이 아주 낮은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벌레들은 낮 동안 분주하게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이들이 무엇을 위해 이동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딱히 먹이를 채집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며,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 같다가도 일시적으로 어딘가에 모여 앉아 있거나 하기 일쑤이지요. 이들이 한군데에 일렬로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전달받기 위함이거나 감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들이 먹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 이런 집단 행동을 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답니다. 이들은 또한 일시에 어느 곳에 모여 서로를 죽이기도 하는데 서로 다른 집단 간의 다툼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역시 흥미로운 연구 과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최근 들어 이들 벌레들이 스스로 죽는 경우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먹이의 고갈이나, 늙어 죽는 것이 아닌데, 별다른 이유 없이 많은 개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다른 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기이한 현상 때문에 ‘자살 현상’이 이 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벌레 종의 공식적인 학명에 자살을 뜻하는 라틴어 sui-cidium 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아, 이 벌레의 이름을 제가 깜빡했군요. 이 벌레의 정확한 생물학적 계통과 그 학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핵생물역-동물계-진정후생동물아계-후구동물상문-척삭동물문-척추동물아문-유악하문-사지상강-포유강-수아강-진수하강-영장상목-영장목-직비원아목-원숭이하목-협비원소목-사람상과-사람과-사람아과-사람족-사람아족-사람속의 <호모 사피엔스>

사과깎이

“바쁘신 와중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조용한 객차 안에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가 오늘 이렇게 용기를 내어 승객 여러분들 앞에 선 이유는…”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오자 승객들의 눈빛이 분주하게 소리의 근원을 찾아 움직인다. 긴장된 듯 약간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듣기 좋을 정도의 맑은 음색이었다. 사람들 시선이 향해 있는 곳에는 의외로 말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점잖은 모양의 여행용 가방이 세워져 있었는데, 평범한 행상이 들고다닐 법한 그런 가방은 아니었다. 가방 앞 주머니를 열기 위해 뻗은 그의 팔 소매 끝에 작은 사과모양 커프스 단추가 번쩍였다.

“바로 이 사과깎이를 소개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남자가 들고있는 사과깎이는 보통의 감자깎이처럼 이중 필러가 달러 있었지만, U자형으로 이어진 다른 한 쪽에 사과를 고정시킬 수 있는 부분이 붙어있었다. 사람들은 그 사과깎이의 생김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관심 밖이라는 듯 고개를 돌려 다시 자기 하던 일에 몰두한다. 관심을 보였다가 괜히 판매자의 눈에 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잘 차려입은 중년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들이 사과깎이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그는 조금 실망한 듯 했지만, 몇 번 마른 기침으로 목을 가다듬더니 힘차게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자 요즘 감기 많이들 걸리시죠? 환절기에 여러분의 건강을 챙겨줄 비타민! 바로 이 사과 안에 들어있는…”

“다음 정차역은…”

“…챙기시라고 제가 이 사과깎이를…”

“사당!”

“…특히 우리 주부님들…”

“사당!”

“사과!”

“역입니다.”

“…불편하셨습니까? 이 사과깎이로 주부님들…”

“내리실 문은..”

“단, 20초! 딱!”

“오른쪽입니다.”

“…됩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을 설명하고 있던 와중에 다음 정류장을 안내하는 방송이 뒤섞여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귀에는 이제 그의 말이 아무 의미 없는 전동차 소음과 다를 바 없었다. 사과깎이 시연을 위해 가방 속에서 사과를 찾고 있었던지, 달콤한 과일 향이 객차 안에 은은하게 퍼졌다. 사람들은 그 향기의 출처를 따라 다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공교롭게도 지하철 내 불법 판매 행위를 발견했을 시 신고 바란다는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돌린다.

사과깎이 장수는 그 안내 방송에 기가 죽어 한 손에 사과를 들고 잠시 망설이는 듯 했다. 역 내로 휘어져 들어가는 객차의 흔들림에 따라 쭈그리고 앉아있던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바로 그때, 그의 손에서 사과가 떨어져 나와 데굴데굴 출입문 앞으로 굴러가 버렸다. 이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환승 열차를 기다리던 사람들 무리가 쏟아져들어왔다. 사과는 발길에 채여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더해진 사람들로 이젠 발 디딜 틈도 없는 객차 안에서, 남자는 한 손에 사과깎이를 들고 잃어버린 사과를 찾아 돌아다녔다. 아마도 그 사과가 마지막 남은 한 알이였던 모양이다. 여기 있나 싶으면 다시 저리로 굴러가 버리고, 저기 있나 싶으면 또 반대로 굴러가 버렸다. 시커먼 회색 옷차림의 사람들 사이로 붉은 사과 알이 숨바꼭질하듯 돌아다니며 남자를 애타게 했다. 방금 들어온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아이씨- 아이씨- 하며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다.

제법 신선해 보였던 사과는 이리 긁히고 저리 채여 생기를 잃어버렸다. 누구 하나 그 끈적거리는 더러운 사과를 주워 주인을 찾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과깎이 장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바닥을 기어다녔다. 그의 몸이 사람들 사이에서 깎여 나가는 것만 같았다. 어렵사리 사과를 붙잡아 드디어 한꺼풀 벗겨내는가 싶으면 또 지하철이 흔들려 놓쳐버리고 말았다. 사과를 찾아 기어가고 미끄러지고, 치익- 하고 문이 열리면 또 아이씨! 아이씨! 그렇게 또 벗겨내고 떨어뜨리기를 수차례. 그 사이 지하철은 다음 환승역에 도착해 있었다.

가득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객차 안에는 처음의 그 말끔했던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한 손에 사과깎이를 들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사과 껍질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남자는 완전히 발가벗겨진 사람처럼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그때 닫혀있던 문이 다시 열리고 누군가의 신고로 들이닥친 순찰원들이 그를 팔을 붙들고 객차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의 손에는 깨끗하게 벗겨진 사과 알맹이가 들려 있었다.

496

사백구십육번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걸치고 있는 죄수복에 비해 몸이 왜소하여 그 모습이 더욱 초라하게 보였다. 하지만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보이는 그의 얼굴은 의외로 생기가 넘쳐 보였다. 광대뼈가 다 드러날 만큼 깡마른 얼굴이었지만 멀리에서도 매끈하게 보일만큼 피부결이 좋아 보였다. 깊이 패인 눈두덩이 안의 커다란 두 눈은 작지만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공중에 떠있는 사람처럼 조용하고 느릿느릿했다.

나는 그를 힐끔 한 번 쳐다보고는 질문지를 검토하는 것처럼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남자가 다가와 앉아 내 손 끝에서부터 손목, 어께, 그리고 얼굴까지를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것이 느껴졌다. 취조실처럼 생긴 이 네모반듯한 면회실에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오직 정적 뿐이었다. 처음 몇 분 동안은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그 침묵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괜히 어설프게 떠본답시고 시답지 않은 말을 꺼냈다가는 오히려 무시당할 공산이 컸다. 사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 지 막막하기도 했다. 나는 이미 이 노老수감자의 느리고 위엄 있는 태도와 눈빛에 압도되어 있었다.

사백구십육번은, 이 남자의 고유번호이다. 이 시설에 들어올 때 대부분 무작위의 번호를 부여받게 되지만, 그만이 특별히 이 번호를 요구했다고 원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496은 완전수이다, 아마도 고유 번호가 세 자릿수이다보니 그 숫자를 고른 듯하다. 조금 더 뜸을 들이다가, 왠지 초조한 기분이 들어, 볼펜 끝을 한 번, 두 번, 세 번을 나누어 튕겼다. 그리고 다시 탁, 탁탁, 탁탁탁탁, 탁탁탁탁탁탁탁 하고 소리를 내었다. 완전수 6과 28의 약수들이었다. 잠시 뒤 그가 책상 위의 열 손가락을 가볍게 펴고는 무심한 척,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하고 두드리며 화답했다. 그의 호감을 얻는데 성공한 것인가? 이윽고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는 연구원이라지? 무슨 얘기를 듣자고 여기까지 찾아왔는가? 나는 면회를 받지 않는다고 원장에게 분명히 일러두었는데…”

“저는 선생님처럼 자발적으로 이 곳, 감옥.. 아니 시설에 들어오신 분들의 갱생을.. 그러니까 다시 사회에 복귀하도록 돕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지요. 원장님과 친분이 있어서 제가 특별히 선생님을 뵙게 해달라고 요청드렸지요.”

말한 그대로였다. 이 시설은 감옥처럼 생겼지만,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가두기 위해 조합을 만들어 세운 수감 시설이었다. 말하자면 이 곳에 있는 죄수들은 각자가 세상 속에서 저질렀던 정신적, 윤리적 범죄를 스스로 속죄하기 위해 만든 자발적 감옥인 셈이었다. 일반적인 감옥처럼, 죄수들은 각자 독방 수감 생활을 하고, 세상과 접촉은 제한되어 있다. 제공되는 물품이나 음식의 질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른 수감 시설처럼 그 종류가 한정되어있다. 죄수들 스스로가 감옥을 세운 설립자이기도 해서, 이 규칙들이 쉽게 무너질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규율들은 아주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제한없이 제공되는 물품은 서적이었다. 죄수들은 수감될 때 각자의 연구 주제를 정하게 되는데, 필요한 서적들은 연구 자료로서 언제든 요청할 수 있다. 이 감옥은 놀랍게도 매 해 죄수들이 발간한 서적들의 판매 수익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요컨대 이곳 역시 수익을 내는 영리 시설이었다.

이런 식의 자립적인, 이른바 ‘자발적 감옥’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여러 특성화 감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정신적인 연구’에 특화되어 있었고, 자발적 감옥으로서는 최초로 설립된 곳이었다. 일종의 연구소나 종교 시설 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통 감옥이라 하면 혐오 시설이라 지역 사회로부터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는데, 이러한 자발적 감옥 시설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무심했다. 수감자들이 저질렀다고 하는 정신적 죄- 라는 것들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감자들 중에는 유명인들도 섞여 있어, 일부 주민들은 관광 효과를 기대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는 경제 활동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어 가뜩이나 인구절벽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로서는 이들을 설득하여 다시 사회로 끌어들이는 것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이곳 수감자들을 인터뷰하고 그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곳에 왔다.

“자네는 우리가 왜 우리가 이곳을 설립하고, 왜 수감되어 있는지 모르는가? 돕는다니 무엇을 돕는다는 겐가? 갱생이라니? 이제 우리를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처럼 대하겠다는 겐가?”

“그건 오해이십니다. 저희는 선생님과 같은 존경받는 수감자 분들을 인터뷰 하고 세상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매해 중대한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 내시는 분들을 정부에서 어찌 범죄자로 취급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에서는 선생님들의 위대한 연구 성과물들이 단순히 서적으로만 출간되는 것에 아쉬워 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또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 등을 통해 재소자 여러분들이 다시 사회와 연결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차원에서 돕는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미래 산업이라니.. 한심한 소리로군. 아직도 정신들을 못 차린 게야. 자네가 진정 이 나라를 걱정한다면, 자네를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여기에 갇히는 편이 나을 것이네. 보나마나 뻔한 얘기지, 정부에서 일하는 놈들은 우리가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두려운 것일 게지.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가 누리는 정신적으로 풍요롭기 그지없는 수감 생활을 동경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네, 실제로 가벼운 경범죄를 저지르고는 제 발로 감옥행을 택한다지? 이게 다 그들이 자초한 일이라네. 고생해서 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경제 성장률이니 뭐니 하는 것도 개인의 행복과는 사실 아무 관련이 없지. 더 나은 세상이라는 것이 통계적 숫자 놀음과 경제적인 발전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나? 안그래도 내 연구가 어느정도 마무리 되어 이제 이 아름다운 수감 생활을 끝내고 나가볼까 생각 중 이었네만, 아직 멀었구만. 자네도 헛수고 하지 말고 이만 돌아가게.”

“세상은 선생님과 같은 현명한 분들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 일들이라는 것이 혼자서 이루는 정신적인 각성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들고 나와 사람들과 직접 문답을 나누며 그들을 깨우치려 했고, 싯다르타 역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것들을 혼자만 음미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 생각을 나누고자 하였지요. 여기 계신 분들이 매년 훌륭한 책들을 출간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통찰과 영감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바깥에는 무기력한 노인들만 넘쳐나고, 젊은이들은 세상과의 애착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참된 스승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책을 출간하시는 것 역시 결국엔 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함 아닙니까?”

“잘못 알고 있네. 우리는 붓다도 아니고 소크라테스도 아니라네. 우리가 책을 만드는 것은 이 아름다운 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위한 것일 뿐, 그 책이 어떤 영향을 미치던 우리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네. 우리가 정신적인 연구 주제를 가지고 매일 노동하는 것은,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유희이기 때문이라네. 유희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유희 과정 자체가 정화 작용이고 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네. 우리의 죄목은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고소하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일종의 살아있는 법정이랄까. 유죄냐 무죄냐 하는 것을 밝혀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자가 느끼는 죄책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낱낱이 밝혀 이해하는 것. 그래서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 소상하게 밝혀 이해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이지.” 하며 남자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하면서 그는 496의 약수인 숫자들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낮 동안의 노역 때문인지 손끝이 무척 두텁고 거칠었다.

이제까지 내가 들어왔던 자발적 감옥에 대한 나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부터 작가들이 온전히 창작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를 임시적으로 가두었던 것처럼, 나는 이들 역시 단기간에 훌륭한 영구 성과를 내기 위해 일종의 간수와 죄수 놀이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자발적으로 갇힌 수감자들이 내는 책’이 불러 일으키는 호기심을 이용하려는 장삿속이 이들에게도 분명히 있을거라 생각했더랬다. 나는 왠지 부끄럽고 숙연해져서,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일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내 날카롭기만 하던 그의 눈빛은 어느새 온화한 노인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스스로의 죄목을 알아내셨는지요?”

“나를 자꾸만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게. 나는 사백구십육번이라네. 허허. 자네도 알겠지만 496은 완전수이지. 자기 자신의 근원이 되는 약수들의 총합이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완전 수. 내 죄목은… 인간이 있기 전부터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수학적 세계에서처럼, 나 자신도 역시 어떤 것들의 총합일 것이라는 착각하는 데에서부터 저지르게 되는 죄일세. 완전한 하나에 대한 집착. 하나와 둘, 그것의 종합으로서의 절대적인 셋에 대한 집착이라네. 마음이란 것은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체계를 세울 수 없는 불완전한 안개와 같은 것이라네. 하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나’라는 인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나는 무상한 ‘나’를 수립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왔다네. 그러한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죄를 짓게 된다네. 여기 있는 동료 수감자들 역시 비슷한 나와 죄를 지었지. 우리가 이곳에서 토론하고 연구하는 것은 자신의 깨달음을 떠벌려 세상 사람들을 감화하려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우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스스로를 격리시켰고, 그 안에서 우리만의 유희, 자신만의 구원을 이루려는 것 뿐이라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누리는 영리라네.”

낯빛

낯빛을 잃어버린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늘 같은 낯을 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도무지 낯빛을 알 수 없는 이 아이를 두려워했다. 칭찬을 해 주어도 웃지 않고 혼을 내도 울지 않는 이 아이를 어른들은 부담스러워 했다. 또래 아이들은 자신들과 같이 마음을 낯빛으로 표현하지 않는 아이를 두려워했다. 그를 졸졸 따라오던 개도 아이의 빛깔 없는 낯을 보고는 깨갱 하며 달아나버렸다.

그래서 아이는 주로 강가에 혼자 나가 시간을 보냈다. 물 위로 고개를 내미는 물고기들과 날아다니는 풀벌레들 만큼은 자신을 무서워하며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고기와 벌레들, 나무와 물과 하늘에는 낯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아이는 낯을 꾸미거나 낯을 가릴 필요가 없는 그 곳이 좋았다.

어느날 아이는 강가의 갈대숲 속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햇빛에 번쩍이는 그 밝은 빛을 따라 가보니 바닥에 얼굴 모양의 거울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는 그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기분이 좋았지만, 자신의 낯빛에는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이는 그 거울을 가면처럼 쓰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거울로 된 가면을 쓰고 집 밖을 나섰을 때 아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 마다 자신을 붙잡고 기분 좋게 웃어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이다. 지나가던 개도 아이의 얼굴을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몇시간이고 슬픔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또래의 아이들은 그를 왕처럼 따라다녔다. 하루아침에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아이는 저녁에 돌아와 가면을 벗어 보았다. 거울에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이 비쳤다. 무슨 영문인가 하여 다시 거울을 쓰려고 보니, 반대쪽에도 거울이 있는 것 아닌가? 아이는 그제야 그날 벌어진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쁨에 찬 사람들은 아이의 얼굴에서 자신과 같은 행복한 얼굴을 발견하고 더욱 기뻐했던 것이었고 슬픈 사람들은 아이의 얼굴에 비쳐보이는 자신의 비통한 얼굴을 보며 속사정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보고싶어했던 얼굴을 보고는 좋아했던 것이다. 이게 다 거울 가면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다시 강가에 가서 원래 그것이 있던 곳에 그것을 버렸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나가보니 온 동네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었다. 어제 아이가 쓰고 나온 거울가면을 본 사람들이 죄다 거울을 깎아서 쓰고 나온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이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자신과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 된 것을 보고는 놀라 뒷걸음질 쳤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얼굴이 예전처엄 웃거나 울지 않는 낯이 되어 버렸음을 알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혼자가 된 얼굴없는 아이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강가로 나갔다. 멀리서 동네를 바라보니, 태양 빛에 반사된 사람들 얼굴이 도처에서 번쩍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얼굴이 필요 없는 자연 속에서 다시금 평화로운 기분에 휩싸였다. 바람이 불지 않아 잔잔한 강물은 높아진 하늘을 파랗게 비추고 있었다.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내밀어 물 위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강물 위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카페, 자정작용 - 혼자 온 단골 손님役

머리가 지끈거린다. 빈 속에 커피를 두 잔이나 더 마셨고, 그런 위장에 맥주를 들이붓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하다. 보통은 한 번쯤 와서 재떨이를 새 것으로 바꿔 주곤 하는데, 오늘 바에서 일하는 여자 아이는 바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모든 테이블이 가득 차 있었다. 날씨가 추우니 죄다 카페로 기어들어 온 모양이다.

바에는 잘 차려입은 웬 남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보통 바에는 단골들이나 카페 직원들과 잘 아는 사람들이 앉곤 하는데, 그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이 카페와 어울리지 않게 검은 정장바지에 검은 구두, 흰 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그는 몇 시간 째 시켜 둔 와인 잔을 쓰다듬고 있었다. 여직원이 내 자리까지 오지 않는 건 아마도 저 손님 때문이리라. 그는 바에서 일하는 K양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K양은 근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다고 했다. 직접 들은 건 아니고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었다. 아직 앳되 보이는 얼굴이라 사람들에게 자기 젊음을 한껏 뽐낼 법도 한데, 자기 할 일 이외에는 좀처럼 손님들에게 말을 걸거나 함부러 웃어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더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주문을 받거나 계산하는 것 이외의 시간에는 늘 뿌쉬킨 같은 희곡 작품이나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의 시인이 쓴 책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K양이 웃어보이는 유일한 대상은 친구도 사장님도 아닌, 내 반대편 끝에 앉아있는 저 외국인이다. 아마도 이곳에서 영어를 가르치거나 하는 줄 알았는데, K양과 종종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러시아인 같기도 했다. 외국인은 거의 매일 카페에 와 있곤 했는데, 외국 잡지들이 있는 서가 쪽 자리만 고집했다. 나는 그로부터 반대쪽 끝, 그러니까 바에서 가장 먼 구석 자리를 점령했다. 지난 번에 카페 연말 파티 때 술김에 그 외국인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서로 질문하는 것에만 익숙하고 대답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여기서 무엇 일을 한다는 것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은 알렉산더였던가 드미트리였던가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오늘 K양은 바쁘다. 나 역시 계산하거나 주문할 때 이외에는 K양과 말을 나눠본 적이 없다. 한번은 계산할 때 내가 어디에 앉아있었는지 잘 모르는 것 같기에, ‘저기 안 쪽 끝자리..’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내 눈을 쳐다보며 ‘알죠‐.’라고 그녀가 말한 적이 있다. 그게 내가 K양과 나눈 유일한 대화였다. 그때 이후로 나는 K양에게 상당한 친밀감을 느꼈다. 그래서 주로 그녀가 일하는 날에 카페를 찾았다.

벌써 자정이 가까워 오는데,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초저녁부터 나와 있었는데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바빠서 미뤄두기만 했던 생각들을 모처럼 풀어내 보려고 무거운 노트북까지 들고 나왔지만, 몇 문장 쓰지도 못하고 메모장에는 괜한 푸념이나 계획 같은 것만 적어놓았다. 글쓰기는 영 틀린 것 같아, 몇시간 전 부터 가져온 책을 펼쳐놓고 있었다. 죽음과 시간에 관한 프랑스 철학자의 강의를 정리한 책1) 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같은 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한문장을 무심결에 읽고 다음 문장을 읽을때면 이전 문장이 파악이 되지 않아 다시 돌아가고, 한참 읽고 있다가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어, 기필코 이 한 문단 만이라도 차근차근 읽고 곱씹어 본 다음에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한과의 관계, 포함할 수 없는 것과의 관계,

다른 것le Differént과의 관계로서의 시간의 지속…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등장이었지만, 모두가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문을 열기 직전에 모든 대화와 음악이 멈췄다. 지하실에 가득차 있던 퀴퀴한 실내 공기가 그녀가 문을 너무 활짝 열어젖히는 바람에 일순간 시원하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다시 K양이 자주 트는 데이빗 보위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사람들은 다시 자신에게 익숙한 곳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내가 앉은 곳에서는 그녀의 뒷모습만 보여,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몰랐지만, 일제히 자신에게 향했던 시선 때문에 잠시 얼어붙은 듯 했다. 더 자리를 둘러볼 것도 없이 그녀는 문간의 빈 자리에 외투를 벗어 놓고 앉았다. 나는 다시 책으로 돌아왔다.

…이 다른 것과의 관계는 그렇지만 무관하지‐않음non-indifferént이다.

여기서 통시diachronie는 ‘동일자‐안의‐타자 l’autre-dans-le-même라고

할 때 ‘안’ dans와 같다…

갑자기, “안 되겠어.” 하고 내 앞쪽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건너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둘은 한참 전부터 그곳에 앉아있었는데 그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해 있는 듯 했다. 여자가 낮은 목소리로 그의 시선을 외면한 채 계속해서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와는 함께 할 수 없어. 처음에 우리가 서로에게 호감을 보였던 것은, 서로가 서로를 가지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지금 너는 나를 가지려 하잖아. 나는 나만 가질 수 있어. 네가 날 가지려 하면 나는 나를 버릴 수밖에 없어.”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는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의 안경알에 여자들 사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반사되어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쳐 나는 화들짝 놀라 다시 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타자가 동일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기억할 수 없는 것에서 예견할 수 없는 것에 이르는 공경.

시간은 이 동일자‐안의‐타자Autre-dans-le-Même이며…

조금 전에 박력있게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시선은 책에 고정시킨 채 그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시야에 작고 귀여운 단화를 신은 그녀의 발이 들어왔다. ‘내가 앉은 쪽 벽에 걸린 그림을 보려는 것이겠지.’ 아직은 다섯 걸음 쯤 떨어져 있는 그녀였다. 나는 다시 이 수수께끼같은 문단을 들여다본다. 다행히 손가락으로 읽고 있던 부분을 붙잡고 있어서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다시 읽으나 처음 읽으나 의미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또한 동일자와 함께 있을 수 없는 타자, 공시적synchrone일 수 없는

타자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타자에 의한 동일자의 불안정일 것이다…

그녀가 다시 한 걸음 나에게로 다가온다. 이제 한 문장만 더 읽으면 된다. 이 문장만 읽고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볼 것이다.

…동일자는 결코 타자를 포괄할 수도, 에워쌀 수도 없다.

두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내게 묻는다.

“과연 화성에서의 삶은 어떨까요?”

뿔‐문학

그가 지금처럼 위대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많은 사람들은 불우했던 그의 어린 시절을 꼽는다. 그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보육원에 맡겨지기까지 이곳 저곳을 배회하며 떠돌아 다녀야 했던 경험이 그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 그토록 냉철한 시각을 가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마치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존재가 아닌 것처럼 글을 쓸 때가 많다. 어떤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경험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시각이 단지 어린 시절의 불우한 경험 때문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가 나타나면, 일단 겁을 집어먹고 그 무언가는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에 그 요인이 있을거라고 단정 지어버리기 마련이다. 나 역시 추측만을 할 수 있을테지만,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그런 독창적 문학 세계를 갖게 된 건 그의 이마에 난 ‘뿔’ 때문이다.

단순한 혹이 아닌 그보다 더 크고 뾰족한 무언가가 그의 이마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보육원에 맡겨져 길러지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이다. 아이들은 머리에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길이의 뿔을 달고 있는 그를 보며 악마의 자식이 틀림없다며 놀려댔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구성된 보육 교사들 마저도 아이들이나 하는 이 저주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어린 나이의 그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지를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 차별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많은 경우 나쁜 길로 들어서기 쉬운데, 이 씩씩한 아이는 이마에 난 뿔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 한 보육 교사는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제 이마에 난 건 뿔이 아니에요. 제 머리가 하늘에 난 구멍을 향해 조금 빠져나가려다 만 자국인걸요. 스스로 어떻게 이 딱딱한 머리뼈를 뚫고 이런 혹을 만들 수 있겠어요. 제 머리 위 하늘에 작은 구멍이 난 거예요. 저는 제 혹이 계속해서 하늘로 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하늘에 정말 구멍이 뚫리면 까만 밤이 제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의 소설가에게 세상은 이미 뒤집혀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볼록 튀어나온 양각의 세계를 본다면, 그는 그 반대편 쪽으로 깊이 새겨진 음의 세계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마에 난 뿔이 얼마든지 전복될 수 있는 세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도 있다. 그가 쓴 문장들을 살펴보면 도처에서 그러한 전복된 세계의 징후들을 볼 수 있다. 그에게 산은 하늘을 향해 솟아나와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의 뿔처럼 하늘 쪽으로 쏟아지듯 움푹 패인 공간이며, 그에게 깊은 골짜기는 하늘에서 땅을 향해 솟아올라있는 거대한 산맥이자 솟아오른 뿔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뒤집어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그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더욱 확장되어 이제는 단순히 객체와 객체 사이의 전복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가 전복된 사고로 전개되어 나타난다. 하여 그의 글을 읽을 때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가 무언가를 바라보면, 바라보는 그 대상 쪽으로 중심이 한 번 이동하고 그 중심은 또 한 번 다른 객체와 자리를 뒤바꾼다. 그렇다고 그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에 대하여 주체를 던지고 뒤바꾸는 건 아니기 때문에 또 한번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일전에 그의 문학 세계를 일컬어 ‘뿔의 문학’이라고 한 적이 있다. 줄여서 ‘뿔‐문학’이다

공기 수집가

그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늘 작은 시험관을 준비해 갔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그 안은 텅 비어있었다. 매번 빈 시험관을 가지고 가서 빈 시험관을 들고 왔다. 시험관에는 라벨을 붙이고 특수하게 제작한 케이스에 넣어 잘 보관했다. 가끔 그 시험관을 들여다보긴 했지만, 절대로 열어보는 일은 없었다. 중지 손가락만한 길이의 시험관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장소와 시간이 기록되어있다. 이를테면, ‘비엔나의 쇤브룬궁 정원 – 2011년 5월 30일’, ‘프라하의 낡은 시내버스 – 2012년 11월 23일’, ‘파리 루브르 지하철역 승강장 – 2014년 10월 15일’과 같은 식이다.

그는 공기를 수집했다. 공기의 성분을 연구하는 화학자라던가 대기오염 표본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과학자여서가 아니었다. 그의 직업은 그와는 관계가 아주 먼, 소설가였다. 그는 공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고대로부터 우주를 구성하는 주요 원소로 항상 손에 꼽히면서도 유일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그는 가장 좋아했다. 모든 존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것이면서도 마치 아무 데도 없는 것처럼 어디에나 있는 그런 공기의 무상함을 닮고 싶어했고, 꽉 들어차 있으면서도 세상 무엇보다도 가벼운, 다른 무엇으로 늘 변하는 공기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했다. 그는 공기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공기를 보며 그는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치 화가가 백색의 캔버스를 들여다보며 무한의 것들을 상상할 수 있는 것과 같았다. 당시의 시야에 갇혀버린 고정된 이미지나 생각만을 전해줄 뿐인 사진이나 짧은 글과는 달리, 공기는 마치 여행지에 도착한 이후부터 경험한 모든 공간과 시간의 기억을 함축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전해주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여행 중에 공기를 들이마시는 데에 더 열중했다. 그리고 그 맛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사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수집한 공기들이라고 해서 그 성분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도 잘 안다. 그는 공기에 맛을 화학 성분들의 조합으로 여기거나 냄새의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공기에 ‘질감’이 있다고 여겼다.

공기의 질감을 기억하기 위해 그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언어는 처음의 그 풍부한 느낌을 더 위축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애초에 보이지 않고 맛볼수 없는 것일 바에, 세련된 언어로 묘사해두기 보다 퇴행적인 촉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촉각이라고 해서 공기가 바람에 의해 살결에 전해지는 느낌을 기억하려한다는 것은 아니다. 공기의 질감을 느끼는 데에는 그만의 방식이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일종의 조각과 같았다. 시각, 청각, 미각, 등 모든 감각들을 엷게 층을 만들어 포개어 놓고 시간과 공간 축에 따라 더하거나 깎아내어 입체적인 하나의 덩어리로서 공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는 공기가 담긴 시험관을 보며 그가 조각한 감각의 덩어리를 눈으로 만지고 추억하는 것이다.

그는 오늘 몇 해 전 갔었던 루마니아의 작은 한 시골마을에서 수집한 공기를 집어 들었다. 잘 닦아 놓아 한없이 투명하기만 한 시험관 속의 빈 공간 들여다본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가장 먼저 너른 들판으로부터 불어 온 공기 속에 담겨있던 짙은 풀 냄새가 났다. 밭에서 온 것인지 비료 냄새도 조금 섞여 있었고 벼룩시장 먹자골목에서 굽는 돼지고기 냄새도 풍겨왔다. 일차선 도로 갓길을 앞서서 걷고 있던 드라고쉬 라는 친구의 자켓에서 풍겨나오는 섬유 유연제 향도 어렴풋이 맡을 수 있었다. 골동품 시장에서 맡아보았던 온갖 물건들의 냄새들을 떠올리느라 코가 얼얼해 질 무렵, 그는 이번엔 소리의 겹을 들추어본다. 처음엔 구체적인 단어들이 아닌 노래와도 같은 억양들이 들려온다. 만났던 사람마다 각기 다른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의미를 가진 언어가 되어 들려왔다. 군중 속에서 나를 놓치고 만 친구가 나를 한참 찾았다며 해준 말, 황동으로 된 술잔을 집어 들고는 트로피처럼 생겼지 않냐며 묻던 말, 바로미터를 보고있는 나에게 루마니아어로 가격을 알려주던 말, 말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말이 떠오르면 말하는 사람의 모습과 표정, 그가 서 있는 곳의 풍경들이 뒤이어 떠올랐다. 이러한 감각들은 시 · 공간적으로 뒤섞인 꿈처럼 한꺼번에 다가오지만, 일단 모든 감각들을 깨워 놓으면 순서에 맞게 재구성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루마니아의 공기가 담겨있는 시험관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았다. 가끔씩 얼굴을 찡긋 거리기도 하고, 뭔가 소리없이 읊조리기도 했는데, 하루 종일이고 그렇게 수집한 공기를 바라보고 있을 수 있을 것처럼 행복한 표정이었다.

도둑맞은‐외투‐장애

내가 이 환자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 년 전의 일이다. 처음 이 환자와 면담을 나누었던 그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지금보다 훨씬 불안정한 상태였다. 외출을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 그의 집을 방문해야 했다.

그를 알게된 건, 그와 연인 관계에 있었던 내 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녀와 나는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후배 사이였고 한 달에 한두 번 만날 정도로 가까웠다. 그녀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나는 정신과 의사였기 때문에 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이 공통의 관심사이다보니, 아무래도 서로의 속마음을 더 쉽게 털어놓게 되었고, 자연스레 가족 보다 더 편한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교제하는 사람이라며, 어떤 화가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먹의 농담으로 화면이 가득 채워진 추상화였다.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했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괜히 질투가 났었는지, 나는 그의 그림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그녀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함께 살기로 했다며, 서울에 살던 집을 정리해야 한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알려진 화가라고는 하나 과연 그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고, 친구로서 더 자주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이전과 달리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좋아 보여 둘의 동거를 애써 축복해 주었다. 너도 결국 시집 가버리는구나–하며, 함께 진탕 술을 마신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일 년 정도 연락이 없더니, 어느날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며, 호텔에 머물며 서울에 살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날더러 헤어진 남자친구를 한번 봐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해왔다. ‘심리학자인 너조차 해결할 수 없는 걸 내가 어떻게 감당해 내겠냐’며 극구 사양했지만, 하도 통사정 해오니 아무리 다른 핑계를 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남자친구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기도 하다며, 자신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남자친구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연민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놔두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다는 승낙을 받아 낸 그녀는 내가 그의 집에서 가지고 나와야 할 물건들의 목록도 함께 알려주었다. 병원 문을 닫고 받아 적은 주소지를 향해 출발했다.

의정부에 도착해서도 한참이나 일차선 국도를 달려가야 할 만큼 외따로 떨어진 곳에 그는 살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에는 한 가닥 길게 뻗어 있는 도로 이외에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웬일인지 나는 긴장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굉장히 낡은, 을씨년스러운 시골집을 상상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그의 집으로 이어지는 아주 잘 가꾸어진 포장도로가 나 있었고 그 끝에는 원형으로 된 커다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정원 한 가운데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네모반듯한 집이 서 있었다. 자연 속에 지어진 집임에도 사람 키보다 높은 담이 그 둘레를 감싸고 있어 요새같기도 했고,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네모반듯한 집이 어느 왕릉 앞에 세워진 커다란 제단 같아 보이기도 했다. 공중에서 보면 아마도 커다란 동그라미 안에 작은 정사각형이 겹쳐진 모양일 것이다. 이런 산골짜기에 이런 인공적인 건축물이라니, 집 자체가 자연 속에서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는 외부로 난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감시 카메라로 나를 보고 있었는지, 벨을 누르기도 전에 그가 먼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의 옛 남자친구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다부진 체격에 부드러운 인상을 하고 있었다. 옛 여자친구로부터 내가 방문할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차를 준비해 주기까지 했다. 화가라고 들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을 보면 그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을거라 믿었지만, 벽에는 아무 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집의 안쪽에는 다행히 햇볕이 드는 작은 안뜰이 있었다. 집의 모양만 봐도 알 수 있었지만, 그는 자연조차 인공적으로 통제된 한해서만 허용하려는 것 같았다. 정사각형의 작은 정원에 그렇게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아까의 친절함은 아마도 이 사람이 굉장한 용기를 내어 보여준 최대한의 성의였던 모양이다. 그는 아주 편안하게 설계된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불안한 듯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아주 조금씩만 말을 했다. 말 수가 적긴 했지만, 나와의 대화를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는 대화에 목말라하고 있었던 듯 했다. 워낙 목소리가 작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일단 나를 귀찮아하지 않는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의 주변 것들에 대한 나의 호기심으로부터 대화를 시작하여, 점차 그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유도해 갔다. 특히 집에 대한 내 호기심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차츰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의 집을 방문하여 상담을 계속 이어갔다. 방문할 때마다 그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다른 말투와 다른 성격을 보여주었다. 어떤 날은 첫 만남에서 보여주었던 소심하고 유순한 모습이었다가, 어떤 날에는 매우 날카롭고, 또 어떤 날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꼬박 육 개월이 지나서야 그는 나에게 어느 정도 일관된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나에게 보여 주기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그의 외면을 그 스스로 찾은 것이다. 지금은 병원에 까지 찾아와 비서에게 인사를 건넬 정도로 회복이 되었지만, 그는 거의 일 년 가까이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정신 장애 통계 편람 DSM에 따르면 그가 보이는 증상은 SCD, 즉 Stolen Coat Disorder 도둑맞은‐외투‐장애 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SCD를 겪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인다. 잠깐씩 만나는 각기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에 집착하기 때문에, 외면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바꿔입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사회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런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특정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갖게 될 때이다. 즉,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바로 그런 예이다. 매일 다른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던 사람이 매일 한 사람과 지내게 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한 단 한 벌의 옷만을 남겨놓게 되는데, 어느 날 그 관계가 끝나버리게 되면 마치 그 유일한 외투를 도둑맞은 기분이 들게 되어 지독한 상실감에 휩싸이게 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단순한 절망 정도가 아니라 그로인해 일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경우, SCD로 진단하게 된다. 심한 경우 홀로 있으면서 자기 스스로를 보는 것조차 못참아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SCD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말 그대로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는 그 외투에 대한 집착을 버리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외투가 자신의 실제가 아니며, 언제든 사라져버릴 수 있는 도둑맞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처럼, 다시는 그렇게 멋진 외투를 지어 입을 수는 없을 거라며, 외투를 가져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경우에는, 다른 방법도 있다. 그 외투는 그녀가 훔쳐간 것이 아니며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외투라고 각인시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꼭 다른 외투를 입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시키고, 떠나간 사람을 위해 만들었던 외투를 입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경험하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그 외투가 낡아서 버려야 할 때가 오더라도 불안해하지 않도록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에게 꼭 맞는 외투를 항상 준비해 놓도록 일러 주어야 한다.

설화 舌話

남자가 자신의 혀를 자른다. 혀가 잘려나갔을 때에 어떤 고통이 뒤따르는 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에, 남자는 그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 잠시 이상한 표정만을 지어보였다. 설령 그 느낌을 안다고 해도 이제 짐승같은 몸부림과 울부짖음 이외에는 그 아픔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혀를 깨물면 죽는다는 얘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다행히도 자르기 직전에 생각해 내었다. 그러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은 서해 어딘가의 갯벌. 이제 다 기울어 가는 겨울 햇살 아래로 낮게 깔린 바다가 반짝거린다. 반짝이는 모든 것들의 수 만큼의 고통이 그의 입 안을 마비시킨다. 떨어져 나간 혀 역시 고통을 느끼고 있을까. 혀의 통각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그에게 그 고통을 전달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겠지만, 자신의 고통을 알아줄 주인이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어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체념한다. 어쩌면 혀의 고통은 주체로부터의 이탈로 인한 심리적인 무엇일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른다. 혀의 고통을 상상하고 미안함을 느낄만큼의 여력이 없어 그는 그저 혀를 바라만 볼 뿐이다. 떨어져 나간 혀 조각이 진흙 속에서 붉게 빛나다가 이내 핏기를 잃고 거무튀튀한 흙색으로 변해간다. ‘죽으면 다 흙빛이 되는구나.’하고 남자는 생각한다. 혀는 진흙 속에서 말이 없다. 작은 게 한마리가 눈치를 살피더니 혀조각 주변을 맴돌다가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게에게는 혀가 필요 없을테지. 마치 혀 끝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것처럼 고동소리에 맞춰 욱신욱신 입 전체가 아려왔다.

남자는 자신의 혀가 초래했던 끔찍한 일들에 비하면 자신의 고통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또한 자신의 혀가 초래할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영영 입밖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혈이 되지 않아 입 밖으로 질질 흘러내리는 피를 닦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다. 그는 태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는 피범벅이 된 채로 기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눈이 부신 데다가 입 안의 핏물을 어찌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머금고 있다보니 어찌보면 웃는 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더이상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혀의 고통에 비하면 한겨울 바다 바람이 전해오는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 큰 고통에 대한 숙연한 마음으로, 다른 감각 기관들은 저 자신의 고통을 겸손하게 낮춘 듯 하다. 아니면, 이 예상치 못한 끔찍한 사태에 뇌가 놀라 혀 아래로의 감각들엔 신경 쓸 겨를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아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혀가 잘려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했더랬다. 죽음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예상되면서도 그 일이 일어나기 전 까지는 그것이 실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체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그는 이것을 예상했다고도, 또 예상치 않았다고도 말해야 정확한 얘기가 될 것이다. 남자의 정신이 자신의 예상을 관철시키고, 몸은 그에 굴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언젠가 몸이 정신에 반격을 가할 날도 있을 것이다.

그가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몸에게 변명한다. 사람들은, ‘그래, 그 사람… 자기 혀를 잘랐다지?’ 하며 그의 과단성을 칭찬해 줄 것이다. 혀로 저지른 잘못에 대해 혀로 용서를 구한다는 명쾌한 방식도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묘지의 猫

겨울 산 무덤가에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도시의 고양이들처럼 매일 털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사람을 홀리거나 하는 그런 외모가 아닌, 한마리 야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주로 도로변 덤불이나 무덤가 주변에서 목격되는 것으로 보아 산에 사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이 산고양이에 대해 무심했지만 나에게는 그 고양이만큼 호기심을 잡아 끄는 대상이 없었다. 집 창문 너머로 야트막한 산이 있었고 그 앞에 앉아서 바라보면 고양이가 출몰하는 무덤이 정면으로 보여, 누구보다도 자주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고양이는 무덤가에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헐벗은 겨울 산에 점박이 무늬 흰 고양이의 모습은 눈에 더 잘 띄었다. 아마도 일부러 볕이 가장 따뜻한 시간을 골라 나온 것일 게다. 도시의 고양이들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걷는 것과는 달리, 이 산고양이는 몸이 더렵혀지는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고도 확신에 찬 듯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탄탄한 어깨 근육들이 울룩불룩 불거져 나왔다. 겨울에 길 고양이들은 따뜻한 지하실이나 자동차 보닛 밑에 숨어든다는데, 보기만 해도 살벌한 겨울 산을 보금자리로 택한 이유는 무얼까.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는 것일까. 까치들이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살거나, 꿩들이 돌아다니는 건 봤지만 고양이는 산에서 무엇을 잡아먹고 사는 지 알 길이 없었다. 겨울이면 산 위로 황조롱이들이 유유히 날아다니곤 하는 걸 보면, 풀 숲 사이에 고양이가 잡을 수 있을만한 쥐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산고양이에 대해 동네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며 흥미를 보이는 듯 하다가도 이내 엉뚱한 대화로 이어졌다. 마치 ‘식사 하셨어요?’라는 말이 정말 밥을 먹었냐는 것이 궁금해서 한 질문이라기보다, 그저 말을 트기 위한 인사에 불과한 것처럼, 고양이에 대한 내 질문은 언제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저 고양이는 무얼 먹고 살까요?”

“그러게요 날씨도 추운데… 그나저나 난방 텐트라고 들어보셨어요? 한 번 써보세요. 엄청 따뜻해서 난방비를 엄청 아끼고 있답니다.”

또 이런 대화도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정말 쥐를 잡아 먹나요?”

“글쎄요, 요즘에도 쥐가 있나요? 그 뉴스 보셨어요? 얼마 전에 프랑스 신경과학자들이 쥐의 뇌를 해킹하는 데 성공했다더군요. 우울한 기억을 조작해 긍정적인 기억으로 바꾸어 놓았다나. 참, 신기하죠?”

각자 서로 하고싶은 말만 하는 데도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그저 말을 쏟아낼 대상을 필요로 하는게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점심 무렵, 산 아래로 차가 한 대 서더니 한 남자가 빗자루와 낫을 들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곧바로 묘지로 올라가 주변의 잡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겨울 초입이라 잡목이 자라날 만한 환경이 아닌데도 벌초라니, 그렇다고 묘지의 친지인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작업복을 차려입은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봉분 주변의 나무들을 정리하고 잔가지들을 다듬었다. 그리고 묘지에서부터 차도까지 이어진 작은 오솔길에 떨어진 잎들을 쓸어 내느라 한두 시간을 더 그 곳에 머물렀다. 일을 마치고 간단히 제사라도 올리고 갈 줄 알았는데, 장비를 싣고는 곧장 차를 몰고 가버렸다. 의문의 남자가 떠난 뒤 삼십분 쯤 지나자 다시 고양이가 나타났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멀리서 보아도 산뜻하게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올라가며 가끔씩 멈춰 서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 마치 남자가 일을 제대로 끝냈는지 검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무덤까지 올라가더니 마른 잔디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얼마 남지 않은 볕을 쬐기 시작했다.

나는 더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고양이를 쫓아가 보기로 했다. 왠지 저 고양이는 사람을 피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괜히 다가갔다가 위협을 가하는 것 처럼 보여 다시는 묘지를 찾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최대한 예를 갖추어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항상 멀리서 보기만 했지 가까이에서 보니 꽤나 가파른 길이었다. 중턱에서 고개를 들어 묘지쪽을 바라보니 고양이가 내 동태를 살피며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만큼 왔는데도 도망가지 않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해는 이미 기울어 나보다 먼저 산을 넘을 기세였다. 묘지에 올라서자 고양이는 그제서야 놀라 재빠르게 비석 뒤로 숨어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고양이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앞집에 사는 청년 아닌가?”

“예, 맞습니다. 알아보시는군요?”

“자네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네. 그런데 무슨 볼일인가?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아, 그게 저는…….”

“내가 왜 도시를 떠나 산에 사는지, 왜 여기 묘지 위에 앉아 있는지 궁금할테지.”

나는 할 말을 잃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네는 아마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네만, 고양이는 그렇게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네.”

그는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하늘 위로 날아드는 기러기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린 정신을 공유한다네.”

그는 갑자기 날아든 귀뚜라미에 정신이 팔려 잠시 말을 끊었다.

“우리 고양이들은 하나의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네. 자네들처럼 스스로를 개별자로 인식하는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자네들도 원래는 우리처럼 단일한 정신을 가졌었지.”

“그렇다면 선생께서는 왜 홀로 산에 나와 살고 계신거죠?”

“자네는 아직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군.”

“나는 하나의 독립된 묘가 아니란 말일세. 나는 자네가 살고있는 건물 지하에 살고 있기도 하고, 노란 털을 갖고 있기도 하고,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도 하고 있을 뿐, 모두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네. 공간 속에 산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들이 말하는 시간 역시 우리에겐 무의미 하다네. 하여 자네들 시간으로 약 십만 년 전 쯤 최초의 조상들로부터 얼마 전 바로 저 아래 도로를 건너다 불행하게도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까지 모두의 기억이 모두에게 공유되어 있다는 말일세.”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차에 치인 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다.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잊어버렸는데, 이미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그렇다면, 제가 만약 고양이 한 마리, 아니 한 분을 모셔다 기르면서 등을 쓰다듬는다면, 선생님께서도 즉각 그 느낌을 느끼실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나는 내가 고양이에게 고양이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고 거의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겨울 산이라 추울 법도 한데 그리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감각은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져 버린다네. 자네들은 감각적인 것들을 좇아 사는 동물이라지? 우리는 오래 전에 감각의 무상성을 깨닫고는 더이상 감각이 주는 쾌락이나 고통을 믿지 않게 되었다네. 미안한 말이네만, 우리는 자네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애착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네. 먹을 것이 궁한 요즈음엔 자네들을 유인해 식량을 얻어내기도 하지만, 그 이외에는 거의 인간들의 일에 관심이 없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고양이들… 아니 선생님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참으로 인간다운 질문이 아닐 수 없구만. 우리에게 삶의 이유 따위는 없다네. 그저 일어나, 탈 나지 않도록 음식을 찾아 먹고 몸을 가다듬는 것이라네. 날씨가 좋으면 이렇게 양지바른 곳에 나와 세상의 온갖 주기와 흐름을 관조하며 명상에 빠진다네. 시간을 초월하여 이미 깨우친 성묘들의 가르침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하지. 부득이 떨어져 살고 있는 몸들이 제각각 느낀 것들을 종합하여 묘류 猫類 전체가 공유할 만한 의미있는 성찰을 이끌어 내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네. 최근에는 인류가 저지른 과오들을 그저 방관할 수만은 없기에 인간들 사이에 최대한 스며들어 그들을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네. 내가 이 곳을 찾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던가? 자네는?”

“아, 네.”

“자네가 알고 있는 묘 墓 는 사실 조상들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묘 猫 의 신에게 바치는 신전에 가깝네. 자네들의 먼 조상, 이집트인들이 그에 가장 열성적이었지. 적어도 그들은 내세에서라도 우리 고양이들의 영전 靈殿 에 합류하는 것이 몸의 세계를 초월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던 게지. 고대의 인간들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현명했다네. 아무튼, 나는 이 묘의 주인일세. 운좋게도 나를 모시는 인간들을 만나 매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고 있지. 어제 다녀간 녀석이 바로 그 친구지. 그나저나, 자네 돌아가보아야 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갑자기 찌뿌둥한 기분이 들어 몸을 둥글게 말아 기지개를 켰다. 앞 다리를 쫙 뻗어 온 몸의 근육들을 한껏 긴장하게 만들었다가 조금씩 힘을 풀었다. 한차례 전율이 꼬리 끝까지 퍼지다가 이내 나른하게 온 몸의 근육들이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이야옹…”

하고 인사를 한 뒤, 나는 가뿐해진 몸을 일으켜 사뿐사뿐 오솔길을 따라 내려왔다. 갑자기 덤불 속에서 재빠르게 몸을 숨기는 쥐가 보였다.

오늘 저녁은 이것으로!

<자정작용自淨作用 - 봄호 中>

안녕하세요 아도르노씨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있는 김대현이라고 합니다. 먼저 이렇게 저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자 하는 젊은 대학생과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대화에 응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선생님께 조금은 개인적인 저의 고민들을 털어놓고자 합니다. 대화에 앞서 선생님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었어야 함이 옳았겠지만, 솔직히, 번역된 책으로 접하는 선생님의 사상은 제겐 너무 어려웠던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는 그저 한명의 예술학도로서 선생님과 오늘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김대현씨가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저의 생각들을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대화에 앞서, 김대현씨의 생각을 먼저 들어보고 싶군요? 김대현씨는 지금 김대현씨가 살고있는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김대현씨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역시, 작가가 되려면 '세계관'이라는 것을 가져겠죠? 하지만 제가 세계관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것 같습니다. 과연 이 세계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요. 실망스러운 대답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저에겐 이 세계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그런 것이랍니다.

예 좋습니다. 김대현씨에게 세계는 '도통 모르겠는' 그런 것이로군요.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보지요. 김대현씨에게 이 세계는 참을만한 곳인가요? 아니면, 참을 수 없이 끔찍한 그런 곳인가요?

아, 글쎄요 어떻게 보면 참을만한 곳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끔찍하기도 하답니다. 이 세계가 참을만하다는 것은, 제가 살고있는 지금의 한국엔 더이상 전쟁도 없고 기아도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다들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과거의 어려웠던 시기에 비하자면 꽤나 확실히 풍요로워지긴 했으니까요. 제가 자라온 세대에는 그런 시대적인 고난이 없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컴플렉스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네 물론, 배가부른 소리이죠. 하지만 제가 끔찍하게 여기는 것은 다른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이 세계속에서 저 자신이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어렸을적 언젠가부터 저는, 진부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피하고 싶어했었습니다. 진부한 말, 진부한 생각, 진부한 가치들로부터 말이죠. 개성있는 외모나 옷차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어 어떤 책을 평소에 읽고싶어 하다가도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리거나 하면 더이상 읽고싶지 않는다던가 하는식으로 말이죠. 고심끝에 남들과 다른 어떤 독특한 생의 슬로건 같은것을 고안해냈다고 하더라도, 그와 비슷한 내용의 슬로건이 텔레비젼 상업광고속에 등장하면 그자리에서 당장 그런 태도를 버리고 싶어지는 그런 것 말입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고싶고, 남들과 다른 것들을 표현하고 싶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나' 라는 사람은 독특하다고 여기고 싶은 것이겠지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김대현씨는 남들과 다르다고 하는 가치를 획득했나요?

결론은, 불행하게도 아니었습니다.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나 많아서일까요?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엔, 나 혼자만 독특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것 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인터넷에서 다른사람들의 블로그를 엿보다 보면, 나만의 고상한 취향이라고 여겨졌던 것들도 이미 너도나도 다 알고있고, 누구나가 꼭 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저 자신도 남들과 비슷한 책을 읽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말을 하며 살고 있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조차 최근에서야 깨닫기 시작한 것이랍니다. 그런 인식은 저에겐 참 고통스러운 경험이랍니다. 남들과 다를바 없다는 사실이 왜 그토록 끔찍하게 여겨지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들어, 서울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있는 스물 여덟살의 남학생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교육과정을 거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있을지를 대부분 추측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빤히 보이는 삶을 삶을 살기 싫어서 일까요? 그렇게 저 자신이 무의미하게 느껴질때가 저는 가장 끔찍하답니다.

솔직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는 김대현씨가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세계가, 제가 보았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군요. 그리고 아마 현대의 예술가들이 느끼는 어려움 역시 김대현씨가 느끼는 것과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대현씨가 느끼는 바 그대로, 이 세계는 모든 개별자의 고유성을 통계적 수치나 교환가치라는 추상적 수치로 통분해버리는 고약한 특성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합리성이 '관리된'사회 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사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수용소인지도 모른다는 의미로서 말이지요. 아마 김대현씨도 저의 이런 생각에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 거대한 하나의 수용소! 그 비유가 참 와닿는 것 같습니다. 정말 이런 곳에서 제가 무엇을 생각해야하고, 무엇을 이야기해야할지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마침 김대현씨가 제가 여쭈어보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하셨군요. 김대현씨는 예술을 전공하신다고 하셨지요? 온전한 대답을 기대하기엔 조금 이르다고 여겨지긴 하지만 묻겠습니다. 김대현씨는 김대현씨가 파악한 그 끔찍한 세계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예술을 통해서 말이지요.

아, 글쎄요. 제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 저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조차 대답할 수 없는걸요.

괜찮습니다. 아마도 저의 질문이 너무 앞질러갔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보지요. 김대현씨는 현대의 많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갤러리에서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혹은 김대현씨에겐 좋아하는 예술가가 있나요?

아, 네, 아마도 저는 선생님 앞에서 좀 더 솔직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갤러리에서 느끼는 감정은 거의 두려움에 가깝습니다. 특히 '무제' 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추상작품들을 볼 때에는 거의 불쾌한 기분이 들 지경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위 잘나가는 현대의 작가들의 작품들조차도 제게는 아무런 느낌도 없습니다. 폴록이 캔버스 위에 뿌려놓은 물감들에서도, 파울 클레가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선들에서도 저는 아름다움이라던가 어떤 감동같은것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아마도 저에게 미학에 대한 소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인 것 같습니다만. 예술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관객들로하여금 지적으로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림 앞에 서있는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이 예술가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었는지 저는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창피하기도 하고요.

역시 기대했던 바 대로, 솔직한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좀 더 쉽게 대화를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 같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대의 예술가은 바로 김대현씨가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런 고통스럽고 불쾌한 체험을 통해서,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불쾌를 체험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김대현씨가 이야기 하셨던 것이기도 하고 또 제가 정의하기도 한 것 처럼, 이 사회는 모든 것을 동일화 하려는 속성을 가지고있습니다. 김대현씨 역시 그런 사회 속에서 본인이 그토록 무의미한 개체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 고통스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술은 바로 그 동일화의 강제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사회와 구별려 하고 그것과의 차이를 주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소통을 거부하고 의미를 파괴하고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배반함으로써, 예술은 사회와 구별되는 자신의 타자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 그런 것이었군요!

소위 '합리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보여주기 위해 예술은 스스로 부조리해지기도 하고, 이 사회의 '질서'라는 게 사실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보여주려고 작품에 혼돈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예술은 사회에 참여해서는 안된며, 사회와 거리를 두고 그것과 급진적으로 다른 타자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의 비동일자로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 사회를 비판하는 방식인 것이지요.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지만,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예술은 사회가 행하는 동일화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해야하며, 운명을 건 그 끝없는 탈주를 통해 예술은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무엇으로 남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회에서 예술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무는 것 밖에 없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아! 눈을 감고 이를 악무는 것밖에 없다니요. 그토록 절실한 생각으로부터 그러한 작품들이 탄생되었다니, 그런 것도 몰랐던 저는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아, 어쨌든, 그런 이유로 현대의 예술은 그토록 '알 수 없는 것'일 수 밖에 없는 것이로군요. 선생님의 표현대로 '타자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객으로 하여금 '고통'을 체험하게 해야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현대 예술이 '아름다운 가상'이기를 포기한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김대현씨도 모더니즘의 행보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아실거라 믿습니다. 현대 예술은 오히려 아름다움을 거부함으로서 아름다움을 기린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현대의 예술가은 바로 김대현씨가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런 고통스럽고 불쾌한 체험을 통해서,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불쾌를 체험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현대의 예술은 현대의 사회적 상태의 미메시스입니다. 하지만 이는 '반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 사회의 부정적 상태가 작품 속의 내용으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면한 그 형식 속에 침전되어진다고 보아야겠지요. 제가 아무래도 김대현씨에게 조금 어렵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 역시 제게 학문적 소양이 부족해서일 것입니다. 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현대의 예술이 왜 그런 난해한 형태여야만 했는지, 왜 제가 그림 앞에서 불쾌와 고통을 느껴야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제가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의 운명이 사회의 동일화로부터 계속해서 도망쳐야 하는 그런 것이라면, 저는 좀 더 새롭고, 좀 더 알수없는 그런 것을 찾아내서 만들어내야 할텐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파괴된 가상은 오로지 '새로움' 속에서만 구제 가능합니다. 이러한 미적인 진보에 참여하지 않고 과거의 조형언어를 고집하는 예술가는 미적으로만 퇴행일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반동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문화산업은 언제고 대량복제를 통해 그 미적 진보를 평가절하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술작품은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작품에 대한 최종적 해석이 있어서는 안되는 그런 수수께끼 말이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예술가란 왠지 이 사회에 대해서 반동적이어야 하고, 약간은 삐딱하기도 해야 하며 또 정신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엉뚱하기도 한 그런 사람이어야 할 것 같군요. 저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고자 할때면 항상 그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에 부딪치고 말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바로 그러한 생각때문에, 절망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선생님의 시대 이후에도 그러한 형식실험은 끝없이 이어져왔고, 20세기에 들어서 새로운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예술의 형태 역시 엄청난 속도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예술가는 얼마나 될까요? 또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예술가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아, 제가 정말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있는 것인지 부터 생각해봐야할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김대현씨에게 현대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긴 했지만, 사실 현대 예술에 있어서 '예술가'는 더이상 미적 주체가 아닙니다. 예술가는 그저 현실에서 진행되는 어떤 객관적 과정을 매개하는 영매일 따름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현대의 새로운 예술적 주체는 이렇습니다. 이성의 폭력성을 거부하고, 자연이라는 타자에 귀를 기울일줄 아는 사람, 동일화의 강박을 벗고 개별자들의 존재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사회의 비합리성을 비판할 줄 아는 탈근대적인 사람, 자신을 지배하면서 동시에 자신 안의 자연성을 억압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 희망도 절망도 그리고 역사의 최종 목적도 섣부르게 상정하지 않는 사람. 수수께끼와 같은 그런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포작할 감수성을 지닌 그런 사람이 진정 현대적 의미의 예술적 주체입니다.

아! 역시 예술가가 되는일은 어려운 일이었군요! 현대의 어떤 예술가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다' 라고 했고, 또 어떤 예술가는 '모든 것이 예술품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었죠.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되려 위로가 되는것 같기도 합니다. 왠지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에겐 또하나의 고민이 있습니다. 저에게 이 세계가 꼭 그렇게 '고통스럽고 끔찍한 것'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편리하며 빠르고, 화려한데다가 재미있기도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는 디지털 전자제품들과, 매일 발표되는 생명공학적 성과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이성에 대해 찬탄해 마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즐기고 있는 입장에서, 이 세계를 '진실하지 못한' 무엇으로 보기란, 되려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일인 것입니다. 아, 선생님과의 대화를 결국, 이렇게 넔두리로 마무리하게 되어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와 함께 자리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있는 고민들은, 저 자신 그리고 동시대를 살고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이겠지요.

되기로했다 라던가 되고싶다

"보험설계사?"

"응."

"그건 또 왜?"

"생각해봐, 우리가 평소에 누구에게서 그토록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는지를."

"점쟁이는 어때?"

"점쟁이가 눈감고 예언하는 그런것과는 다르지. 그들은 철저하게 내 의료기록과 가족들의 병력을 분석하고나서, 내가 암에 걸리거나 심장질환을 일으킬 확률을 산출해주거나 언제쯤 내가 돌아가시게될지를 이야기해주잖아. 그들의 죽음에 관한 통계자료와, 라이브러리는 아! 뭐랄까. 위대하지 않니- 우리는 아마 그 수치앞에서 숙연해질수밖에 없겠지. '아니! 그런 평균적 수치따위가 내게도 적용된다는 보장을 당신이 어떻게 할수있다는거요!' 라고 따져물을수도 있을만한 이야기인데 말이지, 사람들은 진지하게, 고분고분하게, 자신의 죽음과는 관련없는 이야기처럼 그 얘기를 듣잖아. 우리는 그 예고된 죽음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할수밖에 없는지를 새삼 느끼게 될꺼야. '나'라는 존재의 종말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본적 있어?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할수있는 모든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상상할수 없는 그런 주제잖아.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수 있는것중에서 가장 '미래'라는 개념에 가까운 무엇이라구. 물론, 우리의 보험설계사는 그런 망상이 끼어들 틈조차 주지않고 온갖보험상품에 떠들기 시작하겠지만. 그런데 혹시, 너는 종신보험에 대해서 상담받아본적 있어? 종신보험이라니! 내가 죽고난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걸까. 내가 죽고나서도 정말 이 세계는 존재할수 있는걸까?"

"글쎄. 보험설계사에게 물어보지그랬니. 죽음에 대해서라면, 영안실에서 일하는 염사원같은 직업이 더 실감나지 않을까."

"아. 그것도 괜찮겠군."

"못말리는 녀석. 하지만 난 그런 일은 싫어. 뭐랄까, 실컷 불안하게 만들고나서 월급통장에서 돈만 빼나가는 기분이랄까. 없어도 되는 필요를 만들어내서 소비하게 만들잖아. 난 뭐랄까 땀냄새나는 진짜 노동이 더 좋아."

"진짜 노동?'

"응. 예전에 잠깐 고철수집상에서 일을 해본적 있었는데 말야. 세상에 그보다 더 명쾌한 직업이 있을까 싶더라구. 고철수집상은 그저 거래처에서 고철을 싣고와서 고철매매상에다 그것을 팔면 끝이거든. 계산이라고 해봤자 짐을 실은 차의 중량에서 짐을 내린 차의 중량을 빼는 정도랄까. 그 중량에다가 고철가격을 곱하면 되는거야. 말하자면 뺄셈, 곱셈만 할줄알면, 누가 누구를 속이거나 속는 일 조차 일어나지 않지. 그런게 진짜 노동아닐까. 뭐랄까, 나무를 깎아서 의자를 만들어낸다거나, 망치를 두드려서 구두를 만든다던가 하는 그런 땀냄새나는 일말야."

"왜? 그런일들이 더 고귀해보여서?"

"고귀하다기보다는 좀 더. 뭐랄까, 솔직해보이잖아."

"그렇다면 솔직한것이 고귀한거야?"

"음. 글쎄. 너에게 고귀한건 뭐지?"

"이를테면, 예술가나 철학자들. 아니, 소설가들."

"예술가가 고귀하다고 생각해? 난 예술가들을 믿지 않아. 예술산업이나 예술경영 이라는 말도 이해할수 없고 아트페어같은것도 이해할수 없어. 예술가들도 먹고 살아야하긴 하겠지만, 예술가들이 돈을 번다는건 오히려 보험설계사보다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하는거 아닐까. 예를들어 어떤 예술가가, 캔버스위에 점을 몇개 찍어놓고 왜 네가 그것을 갖고싶어해야 하는지를 은연중에 설득시켜야 하잖아. 사용가치는 없다 하더라도, 교환가치가 있다는걸 인식시키기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 이름을 알려야할테고- 어쩌면 아이덴티티 컨설팅을 받거나, 마케팅전략을 세워야 할지도 모르고, 아- 가만, 그런데 너 소설가가 되고싶은거구나?"

"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더이상 소설가가 되고싶지 않아.

고백하자면, 나는 이미 소설가가 되었어."

"하하. 어떻게!"

"음. 음."

"미안. 비웃은건 아니었어. 되기로했다 라던가 되고싶다 일 줄 알았는데 '되었다-'라고 해서 놀랐어. 하지만, 어떻게? 뭔가를 쓴거야? 공모전에 당선됐어?!"

"그런게 아니라, 얼마전에 이런 결론을 내렸거든. 무엇인가가 된다라는 것은, 그냥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그 순간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고. 아니 이루어진다-도 아니지, '되다-' 라는 동사가 더 좋겠어. 그래. 다시. '무엇인가가 된다라는 것은, 그냥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그 순간, 바로 그것이 되는것이다.' 라고. 어쨌든 그래서, 그 결론을 내려버린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나는 소설가가 되었지. 어느날 문득 생각해봤는데, 내가 소설가가 '되기로했다 라던가 되고싶다' 라고만 말하면, 왠지 소설가는 죽어도 될 수 없을것 같더라고. 게다가 누군가에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소설가들의 평균연봉을 들먹이며 혀를 끌끌차거나, 은연중에 소설가는 니가 도저히 닿을수없는 경지라는 듯 선을 긋느라 바쁘거든. 그런데 그냥 '나는 소설가가 되었어-' 라고 말하면 뭐랄까. 듣는 사람은 그저 '그렇구나' 라고 대답할수밖에 없더라고. 뭐랄까,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않아도 되니까 통쾌한기분이랄까."

"음. 그런데 좀 시시하다. 뭔가 극적인 계기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냐?"

"예를들면, 하루키처럼 야구장에서 2루타가 날아가는걸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던가 하는 그런 계기? 난 그런 거 믿지 않아. 소설가의 이미지라는거, 이를테면 싸구려 호텔방 같은데에 투숙하면서 여기저기 여행하듯 떠돌아다니며 이국정서를 느끼고, 아침에는 커피를 위속에 한가득 들이붓고 점심에는 산책을 하고 오후 늦게 명상하듯 잠을 청했다가 자정이 다 되었을때쯤 번쩍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는 뭐 그런 것들."

"그럼 네가 믿는 소설가의 이미지라는건 뭔데?"

"글쎄, 내 생각에 소설가란, 뭐랄까, 나무를 깎아서 의자를 만들어낸다거나, 망치를 두드려서 구두를 만든다던가 하는 그런 사람과 비슷할꺼야. 아! 하지만 왜이리 부끄러울까. 네 앞에서 고백하는것조차 부끄러워. 아무래도 내 생각이 틀렸나봐. 나 자신이 인정해버리면 그걸로 충분할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봐. 누구에게서 인정 받아야할까? 그게 열 명에게서 인정받아야 충분한지 스무 명에게서 인정받아야 충분한지 알수없잖아, 백명에게서 인정받 았다고해서 충분하다고 느끼는것도 우스운일이잖아. 아- 아무래도 유명한 소설을 써야만 하는걸까?"

"아니야. 내가 인정해줄께. 넌 지금부터 소설가다."

"그런데, 소설가가 되기엔 난 조금 통통한것 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