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 시작되고 어느덧 중순을 향해가며 마음이 조금씩 조급해진다. 오래된 문제들이 느리지만 조금씩 해결되어 가고 날씨는 점차 따뜻해진다. 아내는 자기만의 일상을 일구어 간다. 하루하루 건강을 위한 단단한 습관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 스스로를 반짝이게 하는 것들을 조금씩 끼워넣자-고 말해주는 아내가 고맙다. 새들에게 모이통을 마련해 주었는데- 덩치큰 직박구리녀석들 때문에 작은 박새들은 올 기미가 안보인다. 오후 다섯시의 노을처럼 금새 사라져버리고 말 순간순간의 행복감이 소중하고 애틋하다.
방울이
2021년 2월 20일 처음 우리 집에 온 방울이. 구조견이라 정확한 생일은 알지 못하지만 가족이 된 날을 생일로 정하여 축해해주기로 했다. 말 못 하는 이 작고 따뜻한 짐승과 함께 한 2년 동안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얻었고 배우고 있다.
방울이는 우리 가족에게 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베풀지만 정작 그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주고 싶고 재미있게 놀아주고 싶은 것은 그저 우리 인간의 욕심일 뿐, 방울이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세계의 다른 생명을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 일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토록 단순한 것이라 가르쳐주는 듯 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방울이와 함께한 이년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매일 빠짐없이 아침저녁 산책을 하게 되었는데, 내 삶에도 그런 규칙적인 일과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강아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내가 어떤 다른 생명에 대해 이렇게 꾸준한 애착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도 방울이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그 덕분에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더랬다. 그것은 어떤 영원성에 대한 신뢰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문득 태국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하던 때에 늘 함께 산책하던 강아지 로션과 페퍼가 떠오른다. 치앙마이에서도 한참 더 들어간 도이사켓이라는 시골마을에 위치한 레지던시에서 나는 석 달 동안 거의 매일 두 강아지와 산책을 했더랬다. 내가 산책을 주도했다기보다 두 개가 안내하는 대로 길을 따라 나섰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 여유롭고 안전한 산책길이 너무도 좋았더랬다.
레지던시를 떠날 때가 되었을 때 그 공간의 주인인 Ong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여기 머무는 동안 붓다의 일생을 그렸고 내 삶에도 그런 살아있는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옹은 저기 너의 스승이, 붓다가 잠들어있지 않냐며, 씨익 웃으며 두 강아지 로션과 페퍼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내 인생에 얼마 되지 않는 깨달음의 순간.
아무튼 나는 지금 기르는 이 방울이도, 내가 책임감을 갖고 기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닌, 나에게 찾아옷 붓다이고 스승이며 나와 우정을 나누는 가족이자 동료, 동반자로 여기는 것은 그때의 경험 덕분이다. 부디 오래오래 함께 하길.
February 9, 2023
오래전 뉴욕 여행 때 펜슬팩토리에 입주해 있던 다른 작가를 보러 갔다가 알게 된 죤. 겨우 인사를 나눈 정도의 사이인데, 서로의 작업을 보며 친밀감을 느꼈던 것일까, 한국에 여행 왔다며 만나자고 먼저 연락해왔다. 거의 초면인데도 이토록 말이 잘 통할 수가 있다니. 먼 길 찾아와 시종일관 겸손하고 선하게 유쾌하게 대화 나누어 준 죤에게 감사를 🙏🏻 Thanks for visiting us and having time with us. See you in LA or in NYC again!
February 8, 2023
서로의 아침 루틴을 힘껏 응원해주기. 혼자서는 못 할 일들이 둘이면 가능해지는 신기한 경험들을 하게된다.
February 6, 2023
문득문득 행복을 느꼈던 하루. 어머니와의 아침 산책에서 멀리 있는 강아지를 부르는 어머니의 힘 있는 목소리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계단참에 나란히 앉아 날아가는 새들과 그날의 날씨에 대해 어머니와 담소를 나누는 순간에. 아내가 정성스레 차려 놓은 아침상에서 어릴 적 맛보았던 콩나물 국의 개운한 맛을 다시 맛보았을 때. 그 모든 순간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행복이라 할 만 하다. 그저 그 반짝이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지키는 것이 앞으로의 내 생의 모토가 될 것이다. 혼자인 삶에서의 행복은, 그저 우연히 왔다가 잠시 머물고 또 홀연히 사라지는 산새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의 행복은 울타리 안에서 잘 보살피고 가꾸어가는 화초 같은 행복이다. 달고 매워서 얼얼한 행복이 아니라 담백하고 은은한 맛. 괜히 마시면 안되는 술 한 모금 홀짝여보는 밤.
불안, 설렘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설레는 마음으로 한 뼘 정도 붕 떠 있는 요즘. 지난 봄에는그 한 뼘 붕 뜬 위치에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불안한 마음과 설레는 마음은 오묘하게 비슷한 느낌이다. 뭔가 가만히 있어도 광대뼈 부근이 간질간질 달아오르는 느낌이며, 앉아 있는데도 취한 것처럼 몸이 이미 어디론가 쓸려 내려갈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설렘은 그런 위태로운 불안정 상태에도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December 29, 2023
서울미술관에서 석파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직박구리 한 마리가 가만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낮잠을 자듯 눈만 끔뻑거리고 앉아있다. 화란과 나는 의아하여 유리문에 부딪쳐 떨어진 거니? 추워서 그래? 하며 쓰다듬고 작은 몸을 다독였다. 어디가 안 좋은가 싶어 두 손으로 감싸 안았는데, 가벼운 솜뭉치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가볍기만 하다. 조금 따뜻한 양지로 옮겨다 놓고 물을 떠다 주려고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이내 숨을 거두었다. 이게 무슨일이람. 화란과 나는 망연자실한 기분이 되어 직박구리를 다시 조용한 풀숲으로 옮겨주고는 나뭇잎으로 몸을 덮어주었다. 이렇게나 죽음이 가까이 있다.
December 9, 2022
도예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오늘 그 많은 공예품 중에서 마음에 쏙 든 것이 바로 이 작은 접시다. 그림 그릴 때 물컵 하나와 작은 종지 서너 개만 책상 위에 놓고 쓰는 터라, 마음에 드는 물감 종지를 찾고 싶었는데 바로 요 녀석이 딱! 눈에 띄었다. 사각사삭 무광 재질의 표면도 좋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도 마음에 들고, 너무 낮지 않게 솟아있으면서도 안정감 있는 굽의 크기도 적당하다. 공예품의 아름다움은 어쨌건 그 쓰임에 적합할 때, 기능에 충실할 때 빛이 나는 것 같다. 물론 쓰임은 사용자가 정하기 나름!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November 26, 2022
10년 뒤, 20년 뒤을 바라보고 사는 물건이 점점 늘어난다. 혼자 살때는 당장 일년 뒤를 생각하는 것도 장담못할 일들 투성이었는데, 넉넉하게 미래를 계획하는 기분이 좋다. 내 존재가, 나의 수명이 일년이고 십년이고 상상하는 만큼 연장되는 기분이랄까.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매하고 십년 뒤에도 낡은 상자에서 꺼내어 불을 밝히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렇게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잇는 연속성 있는 삶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포근해지는 것만 같다. 그런 걸 보면, 불안이란 어쩌면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 혹은 근 미래의 나와 연속성을 갖고 이어붙일 여력이 없는 데에서 기원하는 것은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연속적이고 항상성을 가진, 성실한 삶을 꿈꾼다. 아무튼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만하고, 점등식을 가진 날을 기념하여.
November 20, 2022
여전히 할일은 산더미같지만, 늦가을 쾌청한 하늘 더 늦기전에 즐기고 싶어 다녀온 처갓집. 장인 장모님과 철원 고석정을 다녀왔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에는 우리도 훌쩍 이렇게 다녀오곤 했는데… 하며 다시 그런 홀가분한 가족여행을 할 수 있어서 기뻤던 하루- 맑은 하늘에 온화한 날씨에 감사한 하루.
November 13, 2022
이제 글 한 문장, 책 한 장 읽을 여유가 생겼나보다. 조금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긴 호흡으로 천천히 살며 바꾸어 나가는 삶이 더 애틋하고 보람차다.
November 5, 2022
처외갓집에서의 배추 한접 김장파티- 매년 입동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에 하신단다.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 기분.
October 20
어떻게 결혼을 결심할 수 있게 되었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은데, 정말 잘 모르겠지만, 이 사람에게는 그 어려운 말이 너무 쉽게 꺼내지더라. 결혼하고 싶다는 말이.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나의 제안을 받아주고 살아주고, 여기까지 와 준, 그래서 나의 아내가 되어준 화란씨에게 무한한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거의 신혼요양 같았던 태국여행을 마치고 이제야 꿈같던 그날의 소회를 적어본다. 다시봐도 예쁜 나의 아내, 행복하게 살아봅시다.
May 31, 2022
이억만여년 전에 만들어진 지구의 속살을 만지고 기어오르기 위해, 그 긴 새월동안 변함없이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산을 올랐습니다. 이끌어준 한샘. 고마워!
의미 보다 느낌
조금 쌀쌀한 아침, 따스한 오후의 빛, 그리고 신선한 저녁 공기. 크게 걱정할 것이 없이 평탄한 어제와 오늘이 지나간다. 아름다운 계절이 지나간다. 또 다가올 바쁜 일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간밤의 부끄러운 일들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오늘 나를 기쁘게 할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고 설레는 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점심에는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들고 산에 올라가서 먹어야지-하는 그런 생각. 저녁에는 서점에 들러 벼르던 책을 구경하고 슈베르트의음반을 사고 싶다-하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림에 대해 생각해본다. 하나의 그림에는 그만의 고유한, 이전과 다른 의미를 담아내야만 한다-라는 고집을 어느 날 버리고 나니,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사실 이전에도 ‘단 하나의 의미’를 담는다는 면에서, 단순함을추구한다는 면에서 지금과 다를 바 없겠지만, 지금은 조금 더 단순해지고자 하는 것이랄까. 그림 안에서 ‘나’를 조금 더 덜어내고 있는 중이랄까. 감상자에게 더 편안한 그림이라는 면에서,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나에게서 감상자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도 말 할 수 있겠다. 요즘의 나의 그림은 그렇다.
하루하루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어떤 강박에서 벗어나, 어떤 날은 그냥 멍-하니 보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을 만날 때, 모든 관계가 운명적이고 중요한 관계여야만 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가까워졌다-멀어졌다 반복하는 것 뿐. 그 과정들을 태연하게 편안히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에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그림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붕 뜬 삶
주말엔 동해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처음보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어른들은 젊은 작가들과 어떻게든 아이스브레이킹 하려고 연신 싱거운 농담과 술잔을 건넸고, 어린 친구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알려 기회를 잡으려는 듯 그에 열심히 호응한다. 나는 중간에서 ‘네네네’, ‘어버버’-하며 선배도 후배도 아닌, 작가도 디자이너도 일러스트레이터도 아닌 어딘가 애매한 입장에서 부자연스럽게 웃고만 있었다. 사실 타인의 일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대체로 많은 것들에 냉소하는 편이지만, 사람들 속에 있으면 괜히 무언가 궁금한듯 물어보고, 자랑하고 싶으면서도 겸손해하며 쑥스럽게 웃는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태도로 억지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자니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날 것 만 같았다. 그런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도, 인상이 좋아 보인다는 칭찬을 계속 들었다. 괜히 술을 많이 마셨고, 마셨는데 그리 취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그 사람의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자-고 며칠 전에도 다짐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단점을 찾기 바쁘다. 맛있는 바다 요리를 먹었는데 음식 맛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여러 사람을 만나 웃고떠들고 마셨는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이상한 밤이었다. 담배 한 갑을 사서 한 개피를 피우고 나머지를 취한 선배 가방에 넣어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숙취가 없어 기분이 좋았다. 망상해수욕장에서 달리기를 조금 하고 해변에 주저앉아 파도를 바라보았다. 바다 색이 유독 파랗고 검었다. 검고 푸른 색 물결 위로 포말이 흰 띄를 이루어 베이지색 모래 위로 차례차례 내려와 엎어지는 모습이 보기에 무척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문들 오는 길 차 안에서 들었던 라디오 뉴스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얼마 전 동해상에 배 한 척이 침몰했다는 뉴스였다. 밤낮으로 실종자들을 수색하였지만 발견하지 못했고, 배가 가라앉은 수역의 깊이가 무려 오천미터에 달하여 견인을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오천미터 깊이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아마 나는 몇 번 허우적거리지도 못하고 가라앉고 말 것이다. 나는 아직도 물에 뜨는 법을 모른다.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그만 온 몸이 경직되고 숨을 잘 쉴 수 없게 된다. ‘그럴 때에는 죽은 사람처럼 온 몸에 힘을 쭉 빼면 물 위에 뜰수 있어!’라고 수영을 잘 하는 사람들은 말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삶을 포기한 것처럼 죽은 시늉을 해야한다니. 참 재미있다. 오천미터 깊이의 낭떨어지를 발 아래 두고도, 죽은 척, 눈 딱 감고, 그런 심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면 살 수 있는것이다. 사실, 요즈음 대부분의 날들을 그렇게 붕 뜬 채 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그냥 눈 딱 감고 잊은 채 살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산만하고 평화로운 나날들
몰입. 오랜만에 그런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예전에 느껴봤던 것과는 다른 몰입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마도각종 소셜미디어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알고리듬이 내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무렵, 단 오분도 그림을 구상하거나 책을 읽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망연자실, 의기소침했던 때가 있었다. 도저히 고쳐지지 않아, 스마트하지 않은 핸드폰을 써본다던가, 각종 아날로그 기기들을 다시 써보려 한다거나 하는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산만해져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보라고 강요하는 알고리즘에 백기를 들고 말기를 반복. ‘아! 저항은 인제 그만, 시대에 순응하자’ 마음을 고쳐먹고서, 그 산만한 정신을 이고 지고 어찌 어찌 살아가고 있다. 여태껏 나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산만하게 움직이는 생각의 흐름을 굳이 막아서서 제어하려 하지 않고, 무언가 떠오르면 그것에 집중하고, 또 다른 것이 생각나면 그 생각에 집중해보기로 한 것이다. 몇 분 단위로 생각의 주제를 계속 바꾸는 일이 여전히 복잡하고 산만하게 느껴지지만, 그 나름대로 생산적인 하루를 보낸 것 같아 개운한 기분. 산만한 것도 나쁘지 않다.
올해는 유난히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책들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나름 공들여 추려낸 책 서른 권 쯤이 침대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지만, 이사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 우파니샤드모음집을 펼쳐 들었다. 그래,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십 대초반부터 시작된 나의 철학 편력의 이동 경로를 말하자면 그러하다. 인도 현자의 금언에서 독일철학으로, 독일철학에서 그리스 철학으로, 오스트리아와 영국을 잠시 경유한 뒤 프랑스 철학으로, 프랑스 철학에서 과학으로, 과학에서 다시 동양철학으로, 철학에서 불교로, 불교에서 힌두교로, 힌두교에서 인도 고대 베다 경전으로… 여기서 멈춘 이후,사실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물론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가장 최근에내 관심사가 가리키는 곳이, 나에게 처음 철학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던 그 시대, 그 지역의 철학으로 나를 다시 돌아오게 했다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진다. 내가 알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의 비밀이 머지않은 그곳에 있을것만 같다. 언젠가는 꼭 히말라야가 가로지르는 인도의 북부, 네팔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여행해보고 싶다.
금연 3일 차, 시험삼아 달리기를 해보았는데 평균속도가 무려 1분이 단축되었다!
진정성, 볶음밥, 텔아비브, 누리호
진정함이라는 것은 시대의 이대올로기. 그것을 재는 척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유아적인 나르시시즘. 진정성이라는 것은 개소리. 뭐 이런 식의 이야기가 출근하는 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아마도 ‘윤’의 진정성 운운하는 변명에 대한 라디오 진행자의 촌철이었을 것.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다가. 뭔가 중요한 정보를 단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한쪽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위아래로 바쁘게 스크롤 한다. 볶음밥은 맛있었는데, 늘 그렇게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있다. 지금, 이 순간 볶음밥을 먹는 일 이외에 중요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는 것을 깨닫고는,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래볶음밥의 맛을 느껴보자. 아니, 매일 먹는 식사에 대한 리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 처음에는 밥알이 퍽단단해서 고슬고슬 씹는 맛이 좋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웍에서 계란과 파 기름에 둘둘 잘 볶아져서인지, 밥알을 씹으면 씹을수록 새어 나오는 고소한 파기름 맛이 무척 좋았다. 짜장 소스는 늘 짜다고 느꼈었는데, 오늘은 조금 이른 점심시간에 와서 그런지, 적당한 느낌이었다. 볶음밥을 먹을 때엔 자장 소스를 너무 많이비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 따로 나오는 짬뽕 국물을 더 좋아한다. 오늘따라 짬뽕 국물이 맛있었다. 역시 중국집은 식당에 찾아오는 시간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
흡연은 임플란트가 실패할 확률을 네 배 높인다는 치과 상담사의 경고에, 그래, 이참에 끊어볼까- 하고 생각하고는 이틀이 지났다. 그런데 이게 왠일,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생활하는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담배 끊지 못한다고 갖은 창피와 굴욕, 모멸을 당하고도 꿋꿋이 태워온 이십년인데.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라고 일단 끊은 것처럼 말해 본다.
질질 끌던 몇 가지 프로젝트가 끝나가고, 밀렸던 배송 건을 처리했다. 행선지는 미국, 네덜란드, 이스라엘. 단돈 삼사만 원에 내 그림들은 국경을 초월하며 잘도 다닌다. 그림이 도착할 텔아비브의 주소를 지도에서 찾아본다. 단정하게 지어진 베이지색 삼층 주택. 낮은 담벼락 주변에는 야자나무가 조경되어 있다. 그림을 주문한데이브-씨가 반가운 듯 한 손을 들어보이며 저쪽 골목에서 걸어올 것만 같다. 짙은 눈썹에 다부진 느낌의 눈과 입, 호리호리한 체형의 젊은 청년일 것 같다. 걷보기엔 냉정하고 담백한 사람인 것 같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금세 흰 치아를 살짝 내보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일 것 같은 그런 아름다운 청년- 일 것 같다. 비록복제된 그림이지만 기꺼이 사주는 사람들을 언젠가는 직접 만나러 다녀보고 싶다.
누리호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수직으로 상승하는 로켓의 운동은 언제봐도 대단하고 감동적이다. 우르르 온힘을 다해 중력을 거슬러 지구를 탈출하는 그 모습이 대단하다.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는, 지어진 한계를 벗어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그런 외로움
누구나 공유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지, 하며 가로등 아래로 연기를 뿜어내고. 천연암반수로 만든 소주와 편의점 냉동 야식 시리즈가 왜이리 맛있지, 하며 생각한다. 공유할 수 없는 외로움은, 그런 것이다. 십일번가에서 어머니를 위한 미끄럼방지욕실매트를 주문하고 소주 먹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릇을 잘 닦아 놓고. 그런 이야기들을 글로 적으면 좋을거야 하며 피식 웃으며 키보드 앞으로 돌아오는 그런 과정들. 그런 과정은 공유할 수 없다. 보고싶은 사람이 생겼지만, 그 사람에게 이런 고독을 공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외로움은 우습게도, 그 모든 과정 속에 관객을 들이고 싶어한다. 이 관객이 보면 어떻겠어, 저 관객은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식. 그러면 나는, 에이- 뭘 하며, 뒷통수를 긁적이며, 괜찮아- 라고 말한다. 그런 외로움은 좋은 것이다.
어제 과음을 한 탓에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다. 느즈막이 일어나 물 한컵을 마시고 다시 누워 잠들고, 다시 일어나 받아놓은 택배 상자들을 열고 뭔가 조금 먹고 나서 다시 잠들었다. H씨의 책표지 그림 작업을 해보려다가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 다시 잠들었다. 기분을 살리려고 방 청소 물건들을 정리했다.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고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저녁에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었지만, 막상 달리기를 하고 웨이트트레이닝을 받고 나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이렇게 그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운동을 하는 것, 공부하는 것 그런 것들로 하루를 보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한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외로움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매일 걷거나 달리기를 하는 습관이 생기고서, 다른 좋은 습관도 가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몸을 단련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마음이 몸에 지배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운동을 하게 되어 다행이다.